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청소년 문제는 한국적 삶의 業報
지난해 12월 대구에서 발생한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노출되는 학교폭력 실태에 우리 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다. 학교폭력과 청소년 자살 문제는 그동안 한국인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에서 초래되는 일종의 업보다. 날로 심각해지는 학교폭력을 근절하고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교와 가족 모두가 힘을 합해야 한다.
반세기 넘게 이어진 ‘압축 성장’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는 직장과 가정의 엄격한 분리와 장시간 근로 문화가 고착됐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근로자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500시간 정도 더 일한다. 작년 12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맞벌이 가정이 43.6%로 외벌이 가정보다 더 많아졌다. 그러나 장시간 근로를 당연하게 여기는 직장 분위기는 여전하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들이 각각 직장과 어린이집이나 학교로 가기 위해 아린 가슴을 참고 아침에 헤어진다. 그러고는 대개 밤늦게 귀가하여 피곤한 몸으로 잠자리에 든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며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함께 풀고 관심사를 공유할 시간적 여유는 없다. 더욱이 학년이 올라가면서 늘어나는 과도한 학습 부담과 특히 입시를 앞둔 학생이 있는 경우에는 가족 간의 대화나 여가 활동이란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펭귄 육아방식에서 배워야
정보화와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새로운 청소년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청소년기는 신체적으로는 성장했으나 아직 두뇌는 더 발달해야 하는 기간이다. 지적 수준이나 판단력은 미완성 단계에 있다. 청소년들이 인터넷게임 중독에 특히 취약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중학생 자살 사건을 통해 인터넷게임 중독이 학교폭력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가해 학생들은 친구가 자살한 사실을 알고 나서조차도 “ㅋㅋㅋ” 문자를 보냈을 정도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다가 뒤늦게야 참회했다. 게임중독으로 인해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최근에 도입된 청소년들의 심야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이른바 ‘셧다운제’가 제대로 시행돼야 한다. 나아가 새로 논의 중인 ‘사용시간 제한제’, 일정 시간 게임 후에 속도가 느려지는 ‘피로도 시스템’ 등 게임중독에 취약한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완적인 제도도 적극 시행돼야 한다. 인터넷게임 중독 예방과 치료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에게 다양한 놀이와 관심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에 가족의 역할이 중요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부부가 함께 자녀를 키운다는 가족 본연의 역할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가정은 있으되 가족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생활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일 중심 문화에서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문화로 전환하여 초과 근무, 회식, 주말 근무 등을 없애고 유연근무제를 확산해 일하는 부모들이 성장하는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와중에 육아휴직 기간을 승진에 필요한 근로기간에서 제외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인 한국 사회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hypaik@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