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커피가 있는 풍경
텅 빈 대관령을 넘자마자 곧장 강릉항 근처 안목해변에 들렀다. 자판기 커피를 홀짝이며 아침을 맞는다. ‘아, 이 맛이야.’ 몇 시간을 달려온 피로는 이미 어둠과 함께 지구 반대편으로 사라져 있었다.
○ 기도를 위해 마시던 음료
지금 강릉에선 공장형 커피숍이란 별칭의 테라로사와 재일교포 박이추 씨(커피업계 발전의 1세대인 1서·徐 3박·朴 중 한 사람)의 ‘보헤미안’을 비롯해 제법 많은 카페들이 바닷바람에 커피 향을 실어 보내고 있다.
커피는 원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자생하던 식물이었다. 커피의 어원에 대해서는 옛날 에티오피아에 있던 카파(Kaffa) 왕국의 이름에서 왔다는 설과, 아랍어 까흐와(Qahwah·원래 술이란 의미에서 나중에 커피란 뜻을 가지게 됨)에서 왔다는 주장 등이 있다.
커피를 마시게 된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7세기경에 살았던 ‘칼디’란 목동의 이야기다. 칼디는 자신이 키우는 양(또는 염소)들이 체리와 닮은 열매를 먹은 후에 생기가 넘치고 흥분하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 궁금증에 자신도 열매를 맛보았는데, 평소와 다른 기분 좋은 황홀함에 놀라 근처 수도원에 보고를 하게 됐다.
수도원장은 칼디가 가져온 것이 ‘악마의 열매’라며 불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그 타는 냄새가 너무나 향긋한 데다 냄새를 맡은 수도승들이 그날 밤에는 아무도 졸지를 않는 게 아닌가. 결국 이후에는 모든 수도승이 칼디가 가져온 열매를 즐기게 됐다.
○ 흙냄새가 섞인 커피 향
강릉에서의 일을 모두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남강릉 나들목 바로 앞에 있는 테라로사를 찾았다. 저녁 무렵의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커피 볶는 향이 넓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바에 앉아 몇 잔이고 리필이 가능한 커피를 종류별로 바꿔 마시며 김용덕 테라로사 대표와 짧은 대화를 나눴다. 커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요즘도 좋은 원두를 찾아 한 해의 절반 이상은 지구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며 웃어 보였다.
“어떤 커피가 맛이 있나요?” 나는 따분한 질문을 던졌다.
그의 창업 과정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듣는 동안 나는 왠지 그가 바로 테라로사(커피가 잘 자라는 붉은색의 토양)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서는 에티오피아 하라 커피처럼 가벼운 흙냄새가 섞인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볼테르(프랑스의 계몽사상가)는 하루에 커피를 70잔씩 마셨다. 발자크(프랑스 소설가)는 글 쓰는 일 외에는 커피밖에 몰랐던 열렬한 커피 애호가였다. 바흐(독일 음악가)는 결혼이나 외출은 포기해도 커피만은 끊을 수 없다고 했다.
솔직히 나는 그들의 깊은 커피 사랑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 오랫동안 커피를 즐겨 왔지만, 사실 커피에 대한 지식이 아주 많지는 않다. 내게 있어 커피의 미덕은, 그 맛보다는 커피가 함께했던 풍경에서 왔던 것 같다. 일찍 일어난 주말 아침, 모카포트에 올려 마시는 여유로운 에스프레소 한잔과,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마셨던 설탕 듬뿍 들어간 자판기 커피 모두에서 기쁨을 느꼈으니 말이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