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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권지예의 그림 읽기]온몸으로 한 획을 그어라

입력 | 2012-01-28 03:00:00


붓, 이정웅. 화가 제공

1월이 다 가고 있습니다. 올 1월은 새해 신정과 설이 다 들어 있어서 두 번이나 새해를 맞이하는 감회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직장에서는 새해 초에 시무식을 했겠지만, 새해 벽두부터 감기로 내내 고생한 전업 작가인 저는 올해 일정을 시작하는 미터기를 설 이후에야 꺾었습니다. 요즘 같은 첨단산업 시대에는 작가란 직업이 가내수공업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연필을 깎아 한 땀 한 땀 수놓듯이 쓰는 작가들도 있으니까요. 저 역시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지만, 독수리타법에다가 자주 문장을 조탁하느라 자판을 멋들어지게 두드려대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펜이나 연필로 아니 그 옛날에는 붓으로 쓰면 엄청난 파지를 냈을 텐데, 컴퓨터라는 기계가 그런 불편함을 없애주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가 옛날에 태어나 글을 썼다면 많이 불편했겠지요?

글을 쓰려면 문방사우가 갖춰진 작은 서안에 정좌해야겠지요. 연적의 맑은 물을 벼루에 붓고 시간을 들여 먹을 정성껏 갈아야 할 테고요. 문진으로 누른 화선지에 먹을 묻힌 붓으로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라앉혀 한 점을 찍겠지요. 이토록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예를 갖춰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마음과 손이 하나가 되어 한 획을 긋기 시작하겠지요. 너무 성급하거나 너무 머뭇거려도 고르지 못한 붓질이 획 하나에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래서 붓을 쥔 사람들은 일필휘지의 경지를 꿈꾸겠지요.

이토록 붓을 쥐고 글 쓴 사람의 감정이나 성격이 드러나는, 사람냄새 나는 글을 우리는 이제 보지 못합니다. 눈물에 번진 잉크 자국이 군데군데 섞인 연서도 우리시대의 마지막 유물이 될 것 같습니다. 그 대신에 손가락 한두 개로 몇 초면 140자를 후딱 쳐서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는 몇 가지 이모티콘을 양념처럼 뿌려 초고속으로 전송하는 ‘패스트 레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새가 지저귀듯 온갖 즉흥적인 말이 난무하는 트위터나 SNS의 말의 홍수 속에서 왠지 심혈을 기울여 한 획을 긋는 붓질의 우직함과 여유가 그립습니다.

여기 이 그림을 보면 붓 자국과 붓의 관계에 대한 살아 있는 하모니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 일(一)자를 쓰려 했던 걸까요? 아니면 어떤 글자의 한 획을 시작하고 있는 중인 걸까요? 먹이 튈 정도로 힘차게 찍고 신중하게 이어가는 붓의 궤적에, 한지에 스민 먹의 농담에 붓을 쥔 사람의 마음의 정중동(靜中動)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우리는 역사에 한 획을 긋다라든지, 내 인생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는 둥, ‘한 획을 긋다’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이 그림의 한 획을 보면 ‘한 획을 긋는다’라는 표현의 의미를 새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붓이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니까요. 무언가 이렇듯 힘차게, 신중하게, 우직하게 온몸으로 밀고 나가지 않으면 어디에서든 한 획을 긋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이 그림은 사진이 아닙니다. 붓에 먹을 묻혀 한지 위에 뿌리고, 붓이 던져진 붓 자국과 그 흔적을 유화물감으로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치밀하게 그려낸다고 합니다. 붓털 하나하나가 살아 있도록 극명하게 표현한 붓은 그야말로 붓 자국도 없이 잘 그려서 종종 사진으로 착각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그림에서 붓이 갖고 있는 내재적인 힘과, 고요한 화폭에 붓이 뿜어내는 긴장된 생동감이 더욱 좋습니다. 내재된 에너지와 희망이 느껴지니까요.

아직은 일(一)월. 조용하나 힘차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한 획을 그어보고 싶어집니다.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