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그러나 이런 정책 목적 달성을 위해 제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정면에 내세우기 전에 그 앞에 있는 제1항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불공정행위와 경쟁 훼손행위는 이런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침해해 제1항을 위반하는 행위이므로 이를 회복하기 위해 당연히 제1항에 근거한 국가 개입이 있어야 한다.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민법에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거래 당사자가 불공정행위를 했을 경우 거래를 무효로 하거나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상대방에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사업영역에서 경쟁 훼손행위를 하며 중소기업과 소비자 이익을 침해할 경우 공정거래법에서 강력히 제재하고 있다.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로 특정 계열사의 주주들이 피해를 보았다면 상법에 근거해 구제받을 수 있다. 일감을 지원받은 계열사가 손쉽게 시장지배력을 획득한 후 이를 남용해 불공정행위를 하거나 경쟁 훼손행위를 하면 역시 민법과 공정거래법상의 통제를 받는다.
지금까지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대기업이 불공정거래행위나 경쟁제한행위를 해 제1항의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훼손했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지 않더라도 그런 우려만으로 규제해 왔고 규제하려고 한다. 하도급법과 대규모 유통업법,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간 부당지원행위 금지 규정과 경제력 집중 억제 규정, 중소기업적합업종 법제화 논의 등이 그것이다. 대부분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규제들이고 이것의 헌법적 근거가 경제민주화 조항이다. 그러나 이런 사전적 규제들로 규제의 실효성이 높아질지는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거래행위와 경쟁행위까지 규제해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훼손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예외 규정이 원칙 규정을 훼손할 수 있어 위헌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특히 지금처럼 정치권이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정면으로 내세우며 재벌 개혁을 시도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정치권은 헌법 제119조 제2항을 정면으로 내세우기 전에 그 앞에 헌법 제119조 제1항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제민주화는 자유시장 경제질서의 범주 내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목욕물을 버린다고 목욕하던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