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학연구학회, 각국 문학 속 부자 모습 담은 ‘문학과 부자’ 펴내
《 “아들아. 낮엔 즐거운 마음으로 사업에 임해라. 하지만 밤에 편히 쉴 수 있는 그런 사업만 해라.” 독일 작가 토마스 만(1875∼1955)의 소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에서 요한 부덴브로크 영사가 아들에게 남긴 편지의 일부다. 이는 창업 때부터 내려온 부덴브로크 상사의 경영원칙을 반영한다. “문어발식 확장이나 투기적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 이 소설은 20세기 초 독일 부자의 모습을 상세히 그려냈다. 당시 독일 부자들은 철저히 따진 후 행동에 옮기는 실속파였다. 부덴브로크 영사가 죽기 전 남긴 유서에서 “딸 안토니가 재혼할 경우 초혼 때 8만 마르크를 지출한 점을 감안해 지참금 액수가 5만1000마르크를 넘지 않도록 하라”고 명시했을 정도다. 하지만 집을 꾸미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저택은 자신의 성공을 외부에 전시하는 수단이자 자부심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
‘문학과 부자’에 참여한 조우호 덕성여대 독문과 교수와 이일환 국민대 영문과 교수, 한동철 서울여대 경영학과 교수 겸 부자학연구회장(왼쪽부터). 지난달 30일 오후 만난 이들은 “각 나라 문학 속 부자의 모습을 통해 현재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자본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이일환 국민대 영문과 교수는 ‘영미 문학에 나타난 부자관’에서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와 미국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 존 업다이크(1932∼2009)의 작품을 비교 분석했다. 이 교수는 “영국 문학에선 오만하고 위선적인 부자가 무리한 욕심 끝에 파멸하는 모습을 주로 그린다. 반면 미국 문학에선 부자에 대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의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문학은 부르주아 계급이 태동한 17세기인지, 이 계급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18세기인지에 따라 부자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김도훈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의 ‘프랑스 문학 속에 나타난 부자의 이미지’에 따르면 귀족이 주 독자였던 17세기 문학은 부자(부르주아)를 희화화했으나 18세기 문학은 부의 축적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한국의 고전문학은 ‘부자 삼대 못 가고 가난 삼대 안 간다’는 속담처럼 ‘부의 순환성’을 강조한다(이복규 서경대 국문과 교수 ‘우리 고전문학에 나타난 부자’). 즉 부자와 가난뱅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노력이나 의지, 또는 운에 따라 처지가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총서에 참여한 교수들은 ‘부의 인문학’이라는 소학회를 창립해 세미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