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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6·25전쟁 피란민 애환과 추억 어린 두 곳을 아시나요

입력 | 2012-02-02 03:00:00


문현 안동네 벽화마을 부산 문현 안동네 벽화마을 골목 그림.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위), 영도 점바지 골목 부산 영도다리 아래 점바지 골목. 세 집만 남아 있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맹추위를 피해 양지바른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따스함이 느껴진다. 6·25전쟁 당시 피란민의 애환이 깃든 부산에는 그런 감성골목이 많다.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곳도 있다.》
○ 뜨는 마을, 문현 안동네 벽화마을

문현초등학교 뒤쪽 도로를 끼고 좌측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작은 안내판이 서 있다. 부산 남구 문현1동 15통 산23-1 ‘문현 안동네 벽화마을’이다. 도심 속 오지이자 삶의 공간과 무덤이 공존하는 동네다. 마을 입구 돌산공원에서 보면 도심과 영도 앞바다가 손에 잡힐 듯하다. 그 아래 조롱박처럼 생긴 양지바른 터 5만4313m²(약 1만6000평)에 움막 같은 집 298채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주민은 641명. 제각각의 모습을 한 슬래브, 슬레이트 지붕 위와 옆의 원통형 파란색 물통이 이채롭다.

원래 이곳은 공동묘지였다. 6·25전쟁 직후 피란민들이 묘지 사이 빈터에 움막을 짓기 시작했다. 1988년과 1992년 두 차례 철거민들이 모여들면서 동네가 커졌다. 두 사람이 비켜가기도 힘든 골목 한쪽에는 지금도 무덤 80여 기가 남아 있다. 무허가 철거대상이었던 이 마을은 2008년 ‘벽화마을’로 변신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대학생과 중고생, 자원봉사자 300여 명이 3개월간 담벼락에다 파스텔톤 그림 47점을 채웠다. ‘ㄱ’ ‘ㄹ’자로 꺾어지는 골목마다 하늘천사, 야구선수, 풍선 등을 그렸다. 주말이면 사람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색 바랜 그림 구경에 2시간은 걸린다.

골목에서 만난 정미지 양(11)은 “우리 동네는 그림이 있어 좋고, 할머니들이 많아 포근함을 느낀다”고 자랑했다. 25년 전 이 동네에 들어와 7년째 마을 심부름꾼을 하고 있는 황숙이 통장(53)은 “주민 모두 갖가지 사연을 안은 채 어렵게 살고 있지만 마음만큼은 넉넉하다”고 말했다.

○ 사라지는 영도 점바지 골목


남포동에서 영도다리 오른쪽으로 건너기 직전 계단을 끼고 일본식 다다미 집이 부산 앞바다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이 소방도로를 사이에 두고 부산 앞바다와 붙어 있는 이른바 ‘영도 점바지(점집)’ 골목. 6·25전쟁 피란시절 영도다리 난간에는 헤어진 가족을 찾는 전단이 빼곡히 나붙었다. 그리움을 견디다 못한 이들은 ‘영도다리 점쟁이’를 찾기도 했다. 당시 이 일대에는 50여 개 점집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성업했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 생사를 확인하려는 피란민 발길이 이어졌기 때문.

그러나 1998년 부산시청이 연산동으로 이전하고 2000년부터 옛 영도다리 복원공사가 추진되면서 점집이 떠나 지금은 사라질 위기다. 현재는 장미화점집(김순덕 씨·77), 소문난 대구 점집(배남실 씨·80), 목화철학관(김남초 씨·76) 등 3곳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30년째 점집을 운영하고 있는 배 씨는 “요즘은 사람 발길이 뚝 끊겼다”며 “이 집들도 철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 연륙교이자 들어 올리는 다리로 1934년 완공된 영도다리는 보수복원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12월이면 옛날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