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민턴 세계정상 자리 위태… 헝그리 정신 되찾아야”
김학석 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은 건강이 좋지 않은 요즘도 유망주 발굴을 위해 지방의 초등학교 대회까지 발품을 판다. 그는 “한국 배드민턴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선 예전과 같은 강한 정신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최근 서울 송파구 대한배드민턴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 부회장은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셔틀콕처럼 시공을 뛰어넘었다.
―올해 7월 런던 올림픽이 열리는데….
한국은 배드민턴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1992년부터 금메달 6개를 수확하는 강세를 보였다. 김 부회장은 큰 대회 때마다 선수들과 동고동락해 ‘왕감독’으로 불렸다. 1961년 중학교 때 배드민턴 라켓을 잡은 뒤 1970년대부터 협회 안살림을 도맡았다. 정작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엔 소홀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심장 이상으로 갑자기 쓰러져 수술을 받은 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전에는 당뇨 합병증으로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을 절단했다.
―배드민턴이 그렇게 좋았나….
―초창기 환경은 어땠나.
―배드민턴은 스포츠 마케팅의 원조로 불린다.
“1982년 일본 용품업체 요넥스와 8만 달러에 후원 계약을 했다. 물품은 별도고 현금 지원만 그랬다. 파격적이었다. 장기 계약으로 대표팀의 안정적 훈련 기반을 마련했다. 다른 종목보다 대표 선수와 코치수가 많다. 2009년 대만 브랜드 빅터와 4년 동안 220만 달러로 계약했다. 작은 회사였던 빅터는 한국 대표팀의 활약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한국 배드민턴은 왜 강한가.
“선수와 임원, 협회 등이 합심해 한 가지 목표로 정진했다. 그런데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선수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졌고 나약해졌다. 이용대는 대중적인 인기 속에 라면, 면도기 CF 모델도 하지 않는가. 풍족하게 훈련하고 있지만 예전 같은 헝그리 정신이 아쉬운 순간도 많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김학석 부회장은
△생년월일=1949년 11월 1일
△고향=경기 이천시
△출신교=성동중-삼성고-중앙대
△주요 경력=1973∼74년 남자 대표팀 코치, 1974∼82년 대한배드민턴협회 경기이사, 1983∼92년 협회 전무이사, 1995년∼현재 협회 부회장 겸 전무이사, 1993∼2002년 국제연맹 이사, 1996∼2010년 아시아연맹 재무위원장, 2011년∼현재 아시아연맹 부회장
△가족관계=부인 채은경 씨와 2남(장남 홍기 씨는 배드민턴 대표팀 영상분석원)
△취미=배드민턴
△애창곡=울고 넘는 박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