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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게한 그 사람]김주영 소설가

입력 | 2012-02-03 03:00:00

도심에 집필실 제공… 그분과의 만남은 행운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고향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나는 유목민이었다. 담도 울타리도 없는 집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도 아닌 몇십 년을 노출의 비애를 맛보며 그렇게 마구잡이식으로 살았다. 정신문화의 수도로 자처하는 그 완고한 고장에서 결손가정의 아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손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처럼 대중없이 날뛰는 생활이었기에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험담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살았다. 그래서 나는 시골 장터거리를 고모도 섬의 왕 도마뱀처럼 건들거리며 오만하게 걸어 다녔다.

가난했으므로 네 것과 내 것에 대한 소유의 경계도 엄격하지 못했다.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내겐 사치였고 허세였다. 아무도 막 살아가는 나를 길들일 수 없었다. 대인관계라면 소름 끼칠 정도로 싫었다. 사람을 만나 심금을 털어놓고 대화를 나누는 일이 두려웠다. 성질은 급하고 걸핏하면 화를 돋웠다. 그처럼 해석하기 곤란하고 난삽한 삶의 모습이 40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한 삶, 나쁘게 얘기하면 반사회적이고 경박한 삶의 행태에 드디어 덫이 걸리는 일이 생겨났다.

그처럼 거칠 것이 없던 내게 충격을 준 분은, 이제 돌아가신 지 7주기를 넘긴 파라다이스의 전락원 회장이시다. 내 70평생의 짧은 생애 중에서 이분과의 만남은 크나큰 사건이었고 행운이었다. 그분을 만나게 된 것은 누님 되시는 전숙희 여사가 계셨으므로 가능했다. 전락원 회장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나와의 첫 만남에서 내게 모자라는 것이 무엇이란 것을 당장 알아차리고 말았다. 내 등 뒤에 숨어 있는 거짓과 두려움을 단번에 간파한 것이었다.

그분이 베푼 나에 대한 첫 번째의 배려는 도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숲이 있어 너무나 조용했던 건물에 집필실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당시 나는 소설을 쓰기 위해 보따리를 싸들고 전국을 떠돌고 있었다. 다섯 식구가 서로 몸을 비비대면서 살아가는 협소한 아파트에선 집중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고, 도시 어디에서도 엉덩이를 느긋하게 붙이고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집필실에서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성공했다. 글 쓸 일이 있을 때마다 또다시 보따리를 싸들고 시골의 여관이나 여인숙을 찾지 않아도 됐다. 그 집필실에서 나는 무려 12권에 이르는 소설을 완성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그 이후 전락원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낙오자 격이었던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대인관계를 할 때 행동하는 방식이나 자세, 그리고 예의와 절차 따위를 꼼꼼하게 가르쳤다. 골프를 가르칠 때도 타수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선 별말씀이 없었지만, 라운드를 같이하는 골퍼들을 대하는 태도와 예절에 대해선 철저하리만치 꼼꼼하게 가르쳤다. 심지어 장터 국밥을 먹는 일에서부터 일식당에서 초밥 먹는 일에 이르기까지 자세와 법도를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하는 것인가를 가르쳤다.

더욱더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내가 그 집필실에서 안정된 자세로 일할 수 있도록 상당한 금액의 지원 역시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 것인지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도 전혀 묻지 않았다. 그 대범함이 오히려 나를 긴장시켰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사용처를 물으면, 그 즉시 대답할 수 있도록 지출 내용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가실 때까지 그것에 대한 질문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추운 곳에서 잠들어야 하는 사람들, 벼랑 위에 서 있는 사람을 지원하고 배려한 것은 나뿐만 아니었다. 그 이름을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예술인들이 그분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처럼 대범한 분이었으면서도 당신 자신이나 가족들에 대해서는 완고할 정도로 엄격했다. 더불어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소문과는 달리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흔히 말하는 외유내강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분이었다.

김주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