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공정사회 추진현황 보고대회’가 열린 정부중앙청사 회의실에서 간단한 실험이 있었다. 연세대생 정호정 씨(23·심리학과)가 “김황식 총리가 ‘국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자”며 참석자들에게 “3초 후 총리 쪽으로 모두 얼굴을 돌려 달라”고 요청했다.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춰 일제히 고개가 돌아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총리가 머쓱해하는 순간 학생의 발언이 이어졌다. “어떠세요? 고개를 돌린 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총리의 생각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조그맣지만 ‘참여’가 이뤄졌기 때문이죠. 참여하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야 정책이 변화를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공정정책 제안공모전에서 ‘정책에 대한 저항감과 태도변화’라는 논문으로 대상을 받은 정 씨가 논문 내용을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각 정부 부처는 국민에게 정책을 알리기 위해 대변인과 공보관을 두고 있다. 그 외 조직은 대부분 정책의 생산과 집행을 맡고 있다. 반면 기업에서는 마케팅부서가 자사 제품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욕구를 파악하고 유도하며 그에 맞춰 연구개발, 생산, 판매 등 기업 활동의 전 과정을 통할한다.
▷현대국가에서도 국민이 얼마나 공감하고 참여하느냐에 따라 정책 성패가 결정된다. 대변-공보가 아니라 정책 마케팅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현 정부는 오래전부터 공정이나 중도이념과 친했다. 성장 위주의 ‘747’ 공약으로 집권했지만 곧 ‘친서민 중도실용’으로 정책기조가 옮아갔고 2010년에 공정사회를 내걸었으며 이젠 동반성장, 공생발전을 국정 운영의 지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고소영 부자 내각’이라는 낙인 때문이었는지 이미지는 친서민과 거리가 멀었고 공정정책 마케팅에서도 고전(苦戰)했다.
▷현실에서 뭐가 공정인지 합의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무엇이 시급히 타파해야 할 불공정인지는 고위공직자 비리 등 대서특필되는 기사만 훑어봐도 금방 안다. 따라서 공정의 개념을 놓고 긴 토론을 벌일 것이 아니라 확실한 불공정 사례를 없애도록 노력하는 것이 효과적인 접근법이다. 이를 위해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정부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정권을 초월한 가치인 공정-공평-정의의 구현을 위해 씨앗 뿌리는 심정으로 묵묵히 실천해나가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