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성주 씨는 항상 메모를 하며 책을 읽는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적어두면 머릿속에 책 내용이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000년 MBC 아나운서가 된 이래 승승장구해왔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인생 커브는 ‘밑바닥을 헤매다 하늘로 치솟은 뒤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할 정도로 진폭이 컸다. 김 씨는 “위기의 순간마다 나를 구제해준 건 책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인생의 첫 위기는 1998년에 닥쳤다. 1997년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의 아나운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곧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고 그는 스튜디오가 아닌 서울 시내 거리로 출근해야 했다. ‘회사를 살려 달라’는 전단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그때 근처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이 안도현 시인의 소설 ‘연어’다.
생각을 바꾸니 견딜 만했다. 입사 동기 아나운서 15명 중 그를 포함해 4명만 남았다. 힘들다고 투덜대지 않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실제로 큰 방송국이라면 초짜 아나운서가 할 수 없을 영역까지 도맡아 할 수 있었다. “2006년 월드컵 때 좋은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 스포츠 중계의 웬만한 상황은 다 섭렵해놓은 덕분이었어요.”
두 번째 위기는 2007년 MBC 아나운서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 프리랜서 선언을 한 후 찾아왔다. “월드컵 이후 유명해지면서 직장인으로 일하기 힘들 만큼 마음이 붕 떴어요. 프리 선언을 하면 여기저기서 불러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정확히 1년 동안 아무 일도 못했어요. 혼란스러웠고 불안했죠. 그때 후배가 책 한 권을 선물했는데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기 시작했어요.”
김 씨는 후배가 건네준 고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꺼내 보여줬다. 첫 장엔 “2007년 7월 21일, 뿌연 안개 속에 제주의 모습이 들어온다. 잘 놀자. 또 매사에 열심히 하자”고, 마지막 장엔 “2007년 10월 28일, 문학의 숲을 걸어 나오다. 석 달간의 산책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보면 ‘단 1분도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문구가 있어요. 눈물이 나왔죠. 거기 나오는 문구들이 다 저를 위로하기 위해 쓰인 것 같았어요. 신기하게도 책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MBC로부터 ‘함께하자’는 연락이 왔고 2008년 2월 다시 방송을 시작했죠.”
그래서 요즘 읽는 책이 소설가 김홍신의 에세이집 ‘인생사용설명서’다. 소설가가 책에서 인용한 자작시 ‘인연’을 김 씨는 마음속에 깊이 새겨놓았다고 했다. “‘천년에 한 번 숨쉬는 거북이가 수많은 구멍 중 뱃머리 송판 조각에 생긴 그 구멍으로 머리를 내밀어 숨 한 번 쉴 때’ 마주칠 정도로 귀한 게 인연이라고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가족과 친구, 동료, 그리고 방송을 통해 만나는 모든 이가 다 소중해집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면 우리 인생도 잘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MC 김성주 씨의 추천 도서
◇연어/안도현 지음/문학동네
시인인 저자의 섬세한 감수성이 아름다운 산문으로 태어난 동화. 은빛 연어 한 마리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가족을 여의고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며 성장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렸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지음/샘터
영문학자인 저자가 다양한 문학 작품을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우리네 일상과 함께 풀어 쓴 에세이.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었지만 강인한 정신력으로 살다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저자의 삶이 뜨겁게 다가온다.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한 설명서가 있다면 그 속엔 어떤 질문이 담겨 있을까. 소설가, 방송인, 정치인으로 살아온 저자가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는가’ 등 인생의 핵심을 이루는 7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