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1위 지자체’ 오명 씻은 서울 노원구의 정성통장 677명이 홀몸노인 말벗 돼주는 도우미고독 달래주니 자살자 수 2년새 180→128명
2일 상계2동 11통장 백동진 씨가 홀몸노인을 찾아 말을 건네고 있다. 서울 노원구 제공
“어르신, 슈퍼 아저씨한테 죽고 싶다고 그랬다면서요. 할머니 돌아가셔서 그렇죠?”
서울 노원구 상계2동 11통장 백동진 씨(43)는 지난해 3, 4월 동네에 사는 홀몸노인 44명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우울증 및 자살 선별검사인 ‘마음건강평가’ 설문지를 손에 꼭 쥐고서다. 설문지에는 결혼상태, 생활수준, 학력부터 현재 생활에 만족하는지,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자살 시도를 해봤는지까지 사적인 질문이 담겨 있었다. 낯선 사람이 집에 찾아가 묻기는 어렵지만 동네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백 씨는 온갖 사정을 에둘러가며 모두 물어 알아낼 수 있었다.
홀몸노인은 누가 찾아만 와도 반가워한다. 당초 30분이면 모두 물어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이 잦았다. 백 씨는 “누구나 생활이 어려워질 수도, 가족과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주변에 아무도 없는 어르신들이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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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씨는 노원구가 지정한 보건복지도우미다. 노원구에는 백 씨 같은 통장이 677명이나 된다. 노원구는 이들을 통해 2010년 만 65세 이상 홀몸노인 1만1474명을 대상으로 생활실태는 물론이고 정신건강 조사까지 했다.
동아일보 DB
▼ 자살 시도 70대 “돕는 사람 이렇게 많으니 살아야지…” ▼
세 번이나 수면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했던 정모 씨(74). 지난해 4월 다시 자살 생각이 떠나지 않자 상담번호를 눌렀다. 그의 첫마디는 “연탄 피우고 확 죽어버리고 싶다”였다. 정 씨는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했다. 갈비집, 횟집이 번창할 때는 오순도순 가정도 꾸렸다. 그러나 부인이 외도로 집을 나간 뒤 인생이 무너졌다. 빚을 지면서 자녀 둘의 학비를 댔지만 지금은 연락도 닿지 않는다. 배신감 억울함 그리고 가족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상태였다. 노원정신보건센터는 매주 상담과 검사를 했다. 인근 복지관에서 매일 전화를 거는 말벗서비스를 제공했다. 푸드마켓에서는 밑반찬을 지원했다. 주민센터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알선했다. 정 씨는 지금 “저를 돕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만큼 회복됐다.
성과는 숫자로 확인된다. 자살자가 2009년 180명에서 2011년 128명으로 줄었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도 29.3명에서 2011년 21.2명으로 27.6% 떨어졌다. 노원구는 자살예방사업을 확대해 2017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1.2명까지 낮출 꿈에 부풀어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