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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 인 스타] 조범현 전 KIA 감독 “이젠 유망주 키우러 전국 야구일주 떠납니다!”

입력 | 2012-02-07 07:00:00

감독 퇴임후 처음으로 입을 열다



조범현 전 KIA감독이 텅 빈 잠실구장 관중석에 앉아 온통 눈으로 덮인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KBO 육성위원장을 맡아 유망주 육성을 위해 전국을 누비겠다는 새해 각오를 밝힌 조 감독. 환하게 웃었지만 야구장에서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자리는 역시 덕아웃이다. 잠실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조범현 전 KIA 감독은 유니폼을 벗은 이후 말을 아꼈다.

퇴임 이후 시간이 조금 지나 KIA를 담당했던 취재진 몇 명과 저녁을 함께 한 것을 제외하면 언론과 만남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도 “KIA가 훌륭한 감독을 모셔왔다”는 말로 모든 것을 대신했고, 곧장 50여 일간 유럽 여행을 떠났다.

자신이 몸담았던 팀, 그리고 후임자에게 아무런 부담도 남기지 않은 아름다운 퇴장. 그리고 해가 바뀌어 조 전 감독은 새 직함을 맡게 되자 그동안 담아놨던 마음을 털어놨다. KIA 감독 퇴임 이후 첫 인터뷰였다.
3일 텅 빈 잠실구장은 모든 것이 하얀색이었다.

누가 그랬는지 장난스럽게 눈 위에 총총히 찍힌 발자국만 있을 뿐 야구장은 텅 비어있었다.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야구장 실내에 마련한 인터뷰 장소. 작은 온풍기 하나가 온 힘을 다해 돌아갔지만 입에서 새어나오는 하얀 입김을 막지는 못했다. 조범현 감독에게 지난 30여 년간 혹독한 겨울은 없었다. 해마다 빠짐없이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여름보다 더 뜨거운 겨울을 보냈다. 정확히 약속시간 10분전 야구장에 도착했다. 검은색 슈트에 모직 코트. 강추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겨울에 잠실구장은 처음인 것 같다”며 하얀색 그라운드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조범현 감독은 지난해 말 사랑스러운 외손자가 있는 독일로 훌훌 떠났다. “기약없이 간다”는 말 한마디만 남겼고 2주, 3주, 한 달이 더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50일 만에 그의 휴대전화에서 ‘해외에서 전화 받으시는 분에게 국제전화 요금이 부과 됩니다’라는 안내가 사라졌다.

그동안 가족들과 모처럼 함께 시간을 보냈고 독일과 스페인 등 유럽 곳곳을 직접 운전하며 여행했다. 그의 가족에게 겨울은 남편, 아빠와 멀리 떨어져 있는 시간이었다. 30년 만에 겨울을 함께 보낸 가족들은 유럽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지만 한국야구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직 공식 발표되지 않았지만 조 감독은 올해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장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이름만 걸어 놓는 명예직은 아니다. 코칭스태프를 구성해 전국을 오가며 학생 야구선수들의 기술훈련을 돕는 육성프로그램을 이끌게 된다.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온 것도 바로 이날 KBO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낙마는 그에게 가족과 함께 만든 추억이라는 큰 선물을 안겼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못했다. 조 감독의 머리와 마음속에는 온통 야구가 있었고 연어가 강으로 돌아오듯 서둘러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온 야구장, 다시 시작하는 전국일주


조 위원장은 2007년 SK 감독에서 물러나고 KIA코치를 맡기 전까지 잠시 현장을 떠났을 뿐 지난 30년 항상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참 쉽지 않았다. 항상 짜여진 일정 속에서 항상 무엇인가를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고심해야 했었는데 모든 것이 사라지자 당황스럽기도 했다. 스페인 해변을 가족과 함께 보면서 ‘아, 참 좋구나’ 그런 마음이 처음 들었다. 모처럼 느끼는 여유라고 할까. 두 달 가까이 충분히 재충전을 하고 돌아왔다.”

KBO는 조 위원장같은 중견 전임 감독을 통상 경기 감독관으로 예우한다. 그러나 조 위원장은 경기 감독관을 정중히 사양했다. ‘내가 들어가면 다른 한 명이 자리를 잃게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KBO는 다시 육성위원장을 제의했다. 조 위원장은 자신은 급여를 받지 않을 테니 코치들이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종종 잡음이 일기도 했던 물품 지원은 일절 관여하지 않고 오롯이 유망주들을 가르치고 용기를 주는 일에 전념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쏟겠다고 했다. “다시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게 됐다. 각 학교에 뛰어난 지도자들이 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다른 손이 필요할 때가 있다. 바쁘게 보내고 싶다. 코치들과 함께 아이들이 신나게 야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다.”

2007년 SK에서 감독직을 내려놨을 때도 조 위원장은 학생야구, 고등학교 선수들을 향해 걸어갔다. 서울고 인스트럭터를 맡아 처음 만난 안치홍은 후에 KIA에서 감독과 선수로 다시 만나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안치홍은 당시를 추억하며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자상하셨다. 그 때 야구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정신없이 웃으며 경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끌어 주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기억했다.

조 위원장은 코치 시절 국내 최고 포수 조련사로 명성을 쌓았다. SK 박경완과 삼성 진갑용은 그와 만나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포수가 됐다. 조 위원장은 “처음 박경완을 만났을 때 오늘 잠실 그라운드처럼 흰색 도화지 같았다. 나쁜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빨리 성장했다. 진갑용은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포수였다. 그만큼 기본기가 좋았다. 박경완, 진갑용이 지금까지 야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올해 만날 학생 선수들이 튼튼한 기본기를 갖출 수 있도록 함께 뛰겠다”고 말했다.

○8년간 냉혹한 승부, 성격마저 변했다

조 위원장은 유니폼을 벗고 편안한 자리에서는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는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서는 냉철한 감독이었고, 스프링캠프에서는 선수들이 혹독한 훈련에 쓰러질 정도로 무서운 지도자였다. 잠시 현장을 떠난 그에게는 손자가 있는 할아버지의 온화한 미소, 풍성함, 여유가 있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다보니 지난 8년간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가끔 스스로 ‘이런 작은 일로 왜 이렇게 짜증을 낼까’그런 후회를 많이 했다. 경기가 없는 날도 항상 머리 한 구석에는 내일 게임에 대한 생각을 하고 몰두하다 보니까 괜히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제 유니폼을 벗었으니까 더 많이 웃어야겠다.” 성격까지 바뀐 냉혹한 승부의 세계, 프로야구 감독 중에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불면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힘겨운 자리라도 야구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오르고 싶어 한다.

○광주팬들 고맙다

특히 조 위원장은 타이거즈 역사상 처음으로 비해태 출신 감독이었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선동열 현 KIA 감독도 삼성시절 2차례 우승컵을 안겼지만 삼성의 올드팬들은 여전히 차가웠다. 조 위원장 역시 KIA에서 연고지 팬들의 냉철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그만큼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조 위원장은 광주팬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명문구단에서 감독을 했고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 덕분에 우승을 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성원을 보내 준 팬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타이거즈 출신은 아니었지만 감독이라면 그러한 부분은 모두 이겨내야 한다. 리더에게는 책임이 있을 뿐 핑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쉬움이 왜 없을까, 그러나 다시 책을 펴고 펜을 잡는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2009년 시즌 초 당시 조범현 KIA 감독은 계약 마지막 해였다. 그러나 “재계약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KIA가 장기적으로 꾸준히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안정적인 전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기적인 성적 때문에 무리하게 팀을 운영할 생각은 절대 없다”고 못박았었다. 그해 우승으로 다시 3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한 해 만에 다시 KIA는 우승후보가 될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 하지만 부상은 그 어떤 명장도 피할 수 없었다. 조 위원장은 “(계약기간 중 중도하차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 아니겠냐. 그동안 힘든 훈련을 끝까지 해낸 선수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팀의 전력이 결실을 맺을 때까지 책임을 다하지 못해 팀과 팬들에게 죄송했다”고 되돌아봤다.

조 위원장은 SK에서 데이터 야구와 40대 감독 돌풍을 일으키며 하위권을 맴돌던 신생구단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다. 당시 많은 기회를 줬던 신인 선수들이 지금 SK의 주축이다. 짧지 않은 암흑기에 빠져 있던 KIA, 잠자는 호랑이를 깨워 10번째 우승컵도 안겼다. 두 차례 리빌딩에 성공한 우승감독, 그리고 야구에 대한 깊은 이론과 철학을 갖춘 그에게 인터뷰 마지막 이것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돌아오셔야죠?”

“어디로 돌아와요? 하하하. 항상 전력 분석지를 보느라고 책을 못 읽었어요. 책도 읽고, 야구에 대한 이론도 다시 정립해봐야죠. 일본으로 단기 연수 계획도 있어요. 1년 동안 최선을 다해 학생들 가르치고 야구공부 열심히 해야죠. 더 성장하고 발전된 모습이 없다면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은 욕심일 뿐입니다. 바쁘게 살겠습니다. 바쁘게.”

▲생년월일=1960년 10월 1일
▲키·몸무게=177cm·80kg
▲출신교=대구초∼대건중∼충암고∼인하대
▲프로경력=1982년 OB(프로야구 원년 멤버)∼1991년 삼성∼1993년 쌍방울 코치∼2000년 삼성코치∼2003년 SK 감독∼2007년 KIA코치∼2007년 KIA 감독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야구국가대표팀 감독(금메달)
▲감독 통산 성적=1044경기 524승 498패 22무(한국시리즈 우승1회, 준우승1회)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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