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안티고네’ ★★★☆
젊은 배우들의 들끓는 에너지가 돋보이는 연극 ‘안티고네’. 히서연극상과 기대되는 연극인상을 2010, 2011년 잇달아 수상한 극단 백수광부의 젊은 배우 박완규(뒤), 박윤정 씨가 연기 대결을 펼친다. 극단 백수광부 제공
대형 로프 2개까지 매달려 불법 격투기장을 연상시키는 그 공간은 치열한 싸움터로 바뀐다. 사내 대 사내의 싸움도 아니다. 노인과 처녀의 싸움이다. 몸과 무기가 맞부딪치는 싸움이 아니다. 눈빛과 고함소리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기(氣)싸움이요, 상대의 이성적, 감성적 약점을 파고들어 매서운 독설을 날리는 말싸움이다.
노인(크레온)은 계엄령하 국가최고회의 의장이다. 처녀(안티고네)는 그의 귀여운 며느릿감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싸움이 가당키나 한가. 이유는 한때 공주였던 처녀의 두 쌍둥이 오빠가 대권을 놓고 ‘개싸움’을 펼치다 서로를 죽인 데서 비롯한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테베의 전설을 극화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극단 백수광대의 ‘안티고네’(김승철 재구성·연출)의 초반 설정이다. 안티고네 남매가 테베의 저주받은 왕 오이디푸스의 자녀이자 형제자매라는 맥락을 생략하고 현대적 계엄령 상황을 가미한 점을 제외하곤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크레온과 안티고네는 초반부터 견원지간처럼 싸우기 시작한다. 사실 그들의 영원한 불화는 서구철학의 주요 화두였다. 헤겔은 이를 국가이성 대 자연도덕의 투쟁으로 해석했다.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남성적 권력욕 대 여성적 모성애로 풀어냈다. 라캉은 이를 인간의 상징질서 대 이를 무화시키는 ‘미친 자연’의 충돌로 봤다. 아감벤은 인간 생사를 관리하는 ‘생체권력’ 대 그 바깥에 위치하면서 그 권력의 위선을 폭로하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연극의 관심은 이처럼 풍성한 해석과 섬세한 분석에 있지 않다. 그들의 명분 내지 신념의 내용과 상관없이 함께 파멸을 맞는 순간까지 멈출 줄 모르는 그 싸움의 형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하이몬 역의 박완규와 안티고네 역의 박윤정은 땀과 눈물, 침, 모래까지 범벅이 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끝이 없을 것 같은 말싸움을 펼친다.
그것은 분명 찬반토론이란 형식논리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해 타협이나 상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한국적 토론문화를 겨냥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크레온과 안티고네는 극중에서 서로 목을 찌르고 죽은 안티고네의 쌍둥이 오빠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의 변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2010년 초연작의 앙코르 공연. 26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 2만5000원. 02-814-1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