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속 한국 자동차시장의 양극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운송수단’으로서의 경·소형차와 ‘지위’를 나타내기 위한 대형·수입차의 판매가 최근 가파르게 늘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소비자의 과시 욕구로 인해 제품의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베블런 효과’에 따른 것이라고 풀이한다.
○ 고급 수입차, 불황에 더 잘 팔린다
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판매 가격 1억 원 이상의 수입차 판매대수는 지난해 9939대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억 원 이상 고가(高價) 수입차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부터 4년 연속 증가했으며 올해는 1만 대 이상 넘어설 것으로 확실시 된다.
반면 수입차 시장에서 중간급에 해당하는 3000만 원 이상∼5000만 원 이하 차종의 비중은 39.9%(4만1910대)로 2010년의 48.1%보다 크게 줄었다. 수입차협회 윤대성 전무는 “경기 침체가 고급 수입차 구매층의 소비 심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특이할 점은 3000만 원 이하 모델의 판매 비중도 약 3.1%(3274대)로 2010년(1.1%·979대)보다 약 3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수입차업계 한 관계자는 “3000만 원 이하는 수입차에 막 관심을 갖게 된 20, 30대 젊은층 소비자들이 첫 차로 선택하는 ‘엔트리(entry)급’이 대부분”이라며 “이들 연령대는 소득 수준에 따라 아예 차를 사지 않거나 수입차를 선택하는 경우로 나뉜다”고 말했다.
○ 국산차도 양극화…‘경차’ 아니면 ‘그랜저’
국산차 시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싼 ‘이동수단’인 경·소형차와 ‘지위’를 상징하는 대형차의 판매가 크게 늘어나는 반면 이전까지 국산차 시장의 주축이었던 중형급 차종의 판매는 줄고 있다.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전 한국소비자학회 회장)는 “경기 불황에 따른 불확실성이 중산층의 소비 심리를 끌어내려 실용적인 경·소형차 구입이 느는 반면 경기에 별 지장을 받지 않는 고소득층은 주변에서 수입차를 사는 경우가 늘어남에 따라 고급차 구매심리를 자극 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
상류층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로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 미국 사회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이 1899년 출간한 저서 ‘유한계급론’을 통해 “상류층의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