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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최영주]퀴리부인에게 배우는 21세기 리더십

입력 | 2012-02-08 03:00:00


최영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는 누구일까. 주인공은 퀴리 부인으로 익숙한 ‘마리 퀴리’(본명 마니아 스크워도프스카)다. 그녀의 조국 폴란드는 지난해 마리의 노벨상 수상 100주년을 기념하며 자부심을 되새겼다. 마리는 방사성 물질 ‘라듐’을 남편과 함께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이후 노벨 화학상을 단독으로 받아 두 번의 노벨상 영예를 안은 유일한 여성 과학자다. 마리의 찬란한 영광 뒤엔 그 업적을 넘어서는 그녀의 확고부동한 인품, 즉 끝없는 노력, 주기만 하고 받을 줄 모르는 헌신적 자기희생, 성공의 화려함이나 고단한 역경에도 변함없던 순수한 영혼, 위험에 굴하지 않은 조국애와 인류애, 과학자로서의 사명감과 윤리관이 있었다. 100여 년 전 마리 퀴리는 이미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십 덕목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능력을 발견해 격려하고 용기를 줄 때 더욱 발전할 수 있다. 마리의 경우도 그랬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마리 곁에는 실직으로 힘들었지만 자식들을 자상하게 키운 아버지와 따듯한 우애를 나눈 형제들, 총명했던 소녀 마리를 과학자로 이끌어준 스승과 동료들이 있었다. 오빠 언니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가정교사로 일했던 마리는 뒤늦게 꿈꾸던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외롭고 고된 타국생활 중 그녀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남편 퀴리를 만나게 된다. 연구를 함께한 동료이자 남편의 배려와 도움, 과학에 대한 신념과 이상이 고독하고 힘든 학문의 세계를 걷는 마리에게는 더없는 동반자였다.

마리는 어린 두 자녀를 남기고 갑자기 사고로 떠난 남편의 죽음으로 커다란 병을 얻었지만 곁에는 태연하려 했던 시아버지가 계셨다. 엄마는 언제나 집 대신 늘 실험실에 있었기에 엄마보다는 할아버지가 두 아이의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마리는 남편과 함께 꿈꾸었던 연구를 혼자 힘으로 끝까지 계속해 과학과 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난치병의 치료도 가능케 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녀는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선의 야전병원까지 가서 치료에 앞장섰던 경험을 담은 그녀의 저서에서는 과학이 가져다준 은혜와 인류적 가치를 강조했다. 저술 내용 어디에도 모든 것이 자신의 발상이었다는 구절은 없다. 마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고도 평생을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았으며 과학자로서 사회에 대한 소명과 소신을 몸소 실천하였다. 한번은 잡지 발행인이 ‘라듐’의 특허와 이권에 대해 귀띔했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 라듐 1g의 가치는 10만 달러였다.

“그 누구도 라듐으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의 원소일 뿐이고 모든 사람의 것이지요.”

퀴리 부부의 과학에 관한 신념이 얼마나 확고했는지는 둘 사이 대화로 알 수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가령 영혼이 빠져나가 우리 몸이 빈껍데기가 된다 해도 역시 연구는 계속해야 하오.” 남편 퀴리가 말했다.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이 부자든 가난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건강하든 몸이 아프든 그런 것이 과학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과학은 그들이 탐구하고 발견하기 위해 존재해 왔으며, 그리고 기력이 다할 때까지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그것을 탐구하고 발견할 것이다. 과학자만큼 자신의 천직과 처절하게 싸워나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기분이 언짢고 짜증나는 날에도 그들의 발걸음은 묵묵히 연구실로 그들을 끌고 간다(이 이야기는 마리의 딸 에브 퀴리가 쓴 ‘아름답고 평등한 퀴리 부부’ 전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최영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