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일본이기에 새삼스러울 게 없다고 할지 몰라도 직접 숫자를 보고 나니 착잡한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다. 2060년 일본의 경제나 재정, 사회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지금 세대가 매일처럼 엄청난 빚을 후세들에게 남기고 있다는 게 마음에 걸릴 뿐이다.
일본은 태평양전쟁 직후인 1947∼49년에 엄청난 베이비붐이 찾아왔다. 이때 태어난 사람들은 ‘단카이(團塊) 세대’라고 불린다. 1948년생인 필자도 그중 한 명이다. 이제 단카이 세대는 모두 일제히 퇴직해 연금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日 잘못된 복지정책으로 부도 위기
1970년에는 오사카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이 같은 국운 상승의 분위기를 타고 1972년에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정권이 탄생했다. ‘일본열도개조론’을 표방한 다나카 총리는 공공사업을 대거 늘렸을 뿐 아니라 1973년을 ‘복지원년’으로 이름 짓고 사회보장을 크게 늘렸다. 서구와 비슷한 복지 수준까지 끌어올려 명실상부한 선진국 클럽에 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1973년은 예기치 않은 역사의 변곡점이 됐다. 제4차 중동전쟁으로 원유 가격이 급등해 제1차 석유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아 이듬해인 1974년 전후(戰後) 첫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세수(稅收)가 격감했지만 일단 계상된 예산은 쉽게 줄이지 못하는 법이다. 일본의 이른바 ‘빚 재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복지원년’은 중간 수준의 복지를 목표로 했지만 부담을 지는 쪽은 저부담에 머물렀다. 이때라도 복지 수준에 맞춰 부담을 늘리는 증세정책을 취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총리는 소비세 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였다. 우선 저출산 고령화를 너무 안이하게 받아들였다. 일하는 여성이 늘면 노인의 보살핌을 가정에 기대할 수 없다. 노인의 수명은 느는데 아이 수는 줄어든다. 이 때문에 2000년에 고령자를 사회적으로 책임지자는 의미에서 개호(介護)보험제도를 도입했지만 의료비는 불어났고 세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여기에 1990년대 거품경제가 붕괴해 세수는 늘지 않는 와중에 오히려 경기 자극을 위해 국채를 계속 발행했다.
또 다른 문제는 사회복지의 많은 역할을 기업에 떠넘기는 일본형 복지의 한계였다. 연공서열, 종신고용이라는 일본적 기업풍토 속에서 기업은 안정적인 고용을 제공했고 자녀양육비와 교육비까지 감안한 급여를 제공했다. 아이들을 사회가 양육하는 북유럽 국가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1990년대가 되자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격심한 경쟁에 휘말리면서 기업경영 방식도 크게 변했다. 비정규직 고용이 크게 늘어난 것이 전형적인 예다.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쪼들려서 결혼도 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늘었다. 이제는 고령자 이상으로 젊은 세대에 대한 사회보장이 과제가 되고 있다. 복지원년 직후 ‘중(中)복지 중(中)부담’의 형태로 복지제도를 바꿨어야만 했다.
한국도 후손 발목 잡는 복지 피해야
한국에서도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다. 출생률의 감소는 일본보다 빠르다. 이와 함께 사회보장의 충실화가 정치권의 초점이 되고 있다고 들었다. 물론 복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부디 후세대의 발목을 잡지 않는 제도를 도입하기를 바란다. 쓸데없는 참견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자업자득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웃나라로부터의 충고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