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에 돈봉투 ‘고백의 글’…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 했던 검찰진술 번복“책임있는 분이 권력으로 위기모면 모습 보고 결단”검찰 ‘300만원은 박희태가 직접 마련’ 진술 확보
고 씨는 이날 오후 서울 모처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고백의 글’이라는 제목의 A4 1장짜리 글을 건네며 심경을 밝혔다. 본인의 지장이 찍힌 이 글에는 “세 번에 걸친 검찰 공개소환 외에 검찰 비공개조사를 통해 그동안의 진술을 번복하고 진실 그대로를 진술하였다는 점을 고백한다”고 썼다.
그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고 의원 측으로부터 300만 원을 돌려받은 뒤 그날 오후 김 수석을 직접 만나 관련 사실을 보고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씨는 그동안 검찰 조사에서 고 의원 측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돌려받은 300만 원은 내가 썼고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해 왔다. 이에 따라 김 수석의 검찰 소환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 수석은 ‘안병용 은평갑 당협위원장의 돈봉투 살포건’과 관련해서도 이를 공개한 구의원들로부터 돈을 전달한 당사자로 지목돼 왔다.
고 씨가 동아일보에 전달한 ‘고백의 글’ 첫머리에는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썼다. 그는 “‘책임 있는 분’은 누구를 지칭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본인이 더 잘 알 것”이라고만 답했다. 다만 “그분이 처음에 고 의원에 대해 ‘일면식도 없다’고 거짓 해명을 하면서 여기까지 일이 이어졌다”고 말해 김 수석임을 시사했다. 돌려받은 300만 원의 용처에 대해서는 “조만간 밝히겠다”고 말했다.
▶ [채널A 영상] “나는 판도라의 상자 여는 열쇠” 고명진 ‘고백의 글’
▼ “진실 감추려 시작된 거짓말, 들불처럼 번져” ▼
그는 글에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시작된 거짓말이 하루하루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이로 인해 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허위진술을 강요받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윗선’의 압력에 따른 허위진술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파장이 예상된다.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 씨가 8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직접 건넨 ‘고백의 글’. 자신의 지장이 찍혀 있다.
고 씨는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져버린 나약함과 한때 모셨던 주인을 물어뜯은 배신자가 되어야 했던 죄책감은 내가 평생 치러야 할 죗값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복잡한 심경을 나타냈다. 또 “이번 일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지쳤다”며 “나의 첫 직장이자 12년 동안 일했던 국회를 떠나려 한다”고 썼다.
한편 검찰은 이날 전당대회 직전 고 의원실에 전달된 돈봉투 속 300만 원은 박 의장(당시 당 대표 후보)이 직접 마련해 선거캠프에 제공했다는 박 의장 측근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전당대회 직전 선거 판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지 대의원 확보가 시급하다고 판단한 박 의장이 서둘러 돈을 마련해 캠프 재정을 총괄하던 조정만 국회의장 수석비서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한 물적 증거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 의장으로부터 해명을 듣기 위해 소환조사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아직 조사 방식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9일 오후 2시 조 수석을 다시 소환해 박 의장으로부터 300만 원을 받은 구체적인 경위와 고 의원 외 박 의장이 돈봉투를 건네라고 지시한 또 다른 의원이 있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다.
또 검찰은 2008년 2월 박 의장 측이 라미드그룹에서 사건 수임료로 받았다는 1000만 원짜리 수표 10장 중 4장을 박 후보 캠프에서 재정·조직 업무를 담당했던 조 수석이 6월 말 현금화한 것으로 파악했다. 또 라미드그룹에서 사건을 수임한 박희태·이창훈 법률사무소 측에서 같은 해 6월 말 박 후보 캠프의 공식회계책임자였던 보좌관 함모 씨에게 1000만 원을 보낸 사실도 확인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