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 “줄소송 덮치나” 떤다
대다수 학부모는 학교폭력을 가볍게 생각하는 학교 분위기에 경종을 울리는 결정이라며 환영하고 있다. 중고교생 아들 2명을 둔 정모 씨(46)는 “교사들이 학교폭력 징후가 있어도 무신경하게 반응해 대구와 대전 등에서 피해학생이 자살했다”며 “교사들이 학교폭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사법처리를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최미숙 대표는 “학교가 학내 폭력 사실을 알고도 자치위원회를 열지 않은 건 엄연한 직무유기”라며 “학생 생활을 책임지는 교사가 학교폭력을 막지 못하면 학원 강사와 다를 게 없다”고 성토했다.
▼ 法 앞에 선 선생님… 학교폭력 교사 책임 어디까지… ▼
일부 피해학생 부모들은 경찰과 검찰 등에 학교와 해당 교사를 고소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다만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심미현 사무국장은 “교사들도 학교폭력 대처법을 몰라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며 “무조건 교사를 처벌하기보다는 교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안양옥 회장은 이준순 서울교총 회장과 함께 9일 서울지방경찰청을 방문해 사법처리에 항의하는 뜻을 전달할 계획이다. 사법처리에 의존하면 교사들이 학교폭력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책임을 면하기 위해 곧장 경찰로 사건을 넘기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게 요지다.
교총은 1997년 대법원 판례를 들며 “의도적으로 직무를 회피한 게 아니라면 직무유기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여론재판을 열어 책임을 교사에게 전가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내고 교사 사법처리 방침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일부 교사는 정부가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해 경찰이 ‘본보기’로 무리하게 입건한 게 아니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 노원구 한 고등학교 김모 교사(42)는 “학생 인격의 상당 부분은 가정에서 형성되고 학생 인권이 강조되면서 교사들의 활동 공간도 축소된 상황에서 학교폭력의 책임을 교사에게만 떠넘기는 것은 큰 문제”라며 “형사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교사들이 책임을 면하는 데만 급급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조계에서는 ‘교사의 잘못을 어떻게 입증하느냐’가 형사 처벌 수위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교사가 학교폭력을 목격하거나 알면서도 말리지 않은 경우에는 직무유기 처벌이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개별 사안마다 다르겠지만 교사가 학교폭력을 말릴 법적 의무를 방치하면 학교폭력 방조범이나 직무유기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경우에도 해당 교사가 (학교폭력 발생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할 경우 중요한 증거가 없으면 기소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학교폭력을 축소·은폐하고 조작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경우에도 유죄 판결로 이어지려면 관련 학생들의 진술 외에도 객관적 증거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교사가 학교폭력을 적극적으로 은폐한 게 아니라 합의를 권유하는 등 학교 현장 상황에 맞춰 대응한 경우 직무유기 혐의를 명확히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의 다른 판사는 “기소가 됐다 하더라도 학교폭력을 행사한 사람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교사를 동일하게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교사가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노력하던 도중 학생이 자살한 경우에는 형사 처벌이 불가능할 것으로 봤다. 다만 한 변호사는 “교사가 학교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어 형사 책임과는 별도로 교사의 민사 책임을 묻는 소송은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