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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형삼]미국판 ‘도가니’

입력 | 2012-02-09 19:57:00


지난해 7월 영국이 13년 만에 교사에게 ‘합리적 물리력(reasonable force)’을 허용했다. 체벌과는 의미가 다르다. 학생들끼리 싸움이 붙거나 학생이 교사를 폭행할 때 뜯어말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영국이 1998년 도입한 ‘노터치(no touch)’ 정책은 교사와 학생의 신체 접촉을 일절 금지했다. 교사가 학생을 성추행했다고 소송당할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였다. 교사들은 예체능 과목을 가르치면서 학생의 몸을 잡고 자세를 교정해 주는 것도, 학생을 칭찬하면서 어깨를 토닥거리는 것도 기피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초등학교 교사 2명이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한 사건이 드러나 교육당국이 교장 교사 정원사 조리사에 이르기까지 교직원 150명 전원을 직위 해제했다. “학교 시스템 전체가 학생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다. 성추행 교사 중 1명은 1994년 한 여학생의 신고로 경찰 조사를 받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학교 측은 4년 전 수상한 낌새를 제보 받고도 쉬쉬하다가 일을 키웠다. 영락없는 미국판 ‘도가니’다.

▷미국은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를 법정 최고형으로 엄하게 처벌한다. 캘리포니아 주는 아동 성학대로 2회 이상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에게 물리적 거세와 화학적 거세 중 한 가지를 의무화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과 일대일로 상담할 때는 성추행 시비를 피하기 위해 반드시 상담실 문을 열어둔다. 그런 나라에서 ‘도가니’가 생길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2010년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초등학생 두 딸이 다니던 학교에서도 교사의 학생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다.

▷전국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2005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교원은 58명이다. 그중 절반이 자기 학교 학생에게 몹쓸 짓을 저질렀다. 58명 중 26명은 정직 감봉 견책 등 가벼운 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이에 비해 미국의 교육당국은 해당 학교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경찰이 학교폭력을 방치한 교사를 처벌하겠다고 하자 교원단체인 전교조가 “교사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교총도 항의했다. 학생과 매일 마주하며 가르치는 교사가 어떤 형태이건 학교폭력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