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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어그에 대한 세가지 오해

입력 | 2012-02-10 03:00:00

① 방한부츠 일색?→봄여름 컬렉션 즐비
② 모두 뭉툭하다?→화려한 럭셔리 많아
③ 여성의 전유물?→男제품 잇따라 내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유명 쇼핑몰인 그로브 안에 있는 ‘어그 오스트레일리아’ 매장 전경. 어그의 모델로 발탁된 미식축구 선수 톰 브래디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로스앤젤레스=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55년 만의 이상한파로 전국이 얼어붙었던 입춘(立春) 날. 명동 거리를 걷다 문득 궁금해졌다. 얼마나 많은 여성이 양털로 만든 부츠를 신고 있는 걸까. 거리에 멈춰 서서 세어보았다. 대략 10명에 6명꼴. 캐주얼에서 정장까지 입은 옷에 상관없이 발끝은 모두 양털부츠였다. 이렇게 양털부츠는 발 빠르게 한국 여성의 발을 점령하고 있었다.

LAUGG 본사 르포… 편견을 바로잡다

양털부츠의 원조 브랜드는 ‘어그 오스트레일리아(UGG Australia·어그)’. 가운데 G가 조금 커다란 ‘UGG’ 로고의 ‘바로 그 신발’이다. 한국에서 어그 브랜드가 양털부츠의 대명사로 통칭된 건 2004년 TV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영향이 컸다. 당시 배우 임수정이 어그부츠를 신고 나오자 대다수는 한때 유행에 그칠 거라 생각했다. 투박하고 뭉툭한 부츠는 어떤 세련된 외투와도 어울리지 못했다. 빨간색 코트에 검은색 어그부츠를 신고 나가면 사람들은 ‘영의정 패션’이라 놀렸다. 오죽했으면 남자들이 싫어하는 여성 중 하나가 ‘어그 신은 여자’라는 말이 있을까.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어그는 ‘스카치테이프’ ‘버버리’처럼 특정 브랜드를 넘어서 일반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어그와 비슷한 양털부츠를 파는 브랜드들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8년 국내 판매를 시작한 베어 파우(Bear Paw)는 지난해 11월부터 1월까지 20만 켤레 이상을 팔며 100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거뒀다. 겨울철만 되면 오픈마켓들은 ‘어그 스타일 부츠’ ‘어그 부츠’ 등을 금칙어로 정하고 있다. 상표를 도용한 ‘짝퉁’이 활개를 치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난달 3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샌타바버라에 있는 ‘어그 오스트레일리아’ 본사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만난 코니 리시웨인 최고경영자(CEO)는 어그가 나아가야 할 조금 색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그것은 ‘어그는 투박한 디자인에 방한용 겨울부츠이자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기존 인식을 뒤집는 것이었다. 그는 4월 말 청담동에 들어서는 플래그십스토어 개관 행사를 위해 처음 한국을 방문한다.

어그는 방한용 겨울부츠라는 편견

지난달 31일 미국 샌타바버라의 ‘어그 오스트레일리아’ 본사에서 만난 코니 리시웨인 최고경영자. 신세계인터내셔날 제공

‘어그 오스트레일리아’의 본사가 호주가 아닌 미국, 그것도 사계절이 따뜻한 캘리포니아 주 샌타바버라에 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헨드리스 해변에 앉아 점심을 먹는데 어그부츠를 신고 돌아다니는 서퍼들이 눈에 띄었다. 시내 카페에도, 호텔에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들의 발에는 어그부츠가 신겨져 있었다. 초가을 날씨에 웬 어그부츠? 어그의 기원을 알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어그부츠는 패션보다 실용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 1978년 호주인 서퍼였던 브라이언 스미스는 물에서 나온 서퍼들이 발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어그부츠를 발명했다. 여기에 쓰이는 십스킨(Sheepskin·양가죽과 양털이 함께 붙어있는 부위)은 추울 때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서 더울 때는 시원하게 해준다. 이때부터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가벼운 차림에 어그부츠를 신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럭셔리로 옷 갈아입고 남성-키즈-홈패션으로 영역 확장▼

어그는 2005년 처음으로 ‘서프 컬렉션’이라는 샌들을 판매했다. 이어 같은 해 뉴욕의 소호에 첫 단독 매장을 열었다. 단독 매장을 상설로 운영하려면 양털부츠뿐만 아니라 봄여름 제품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천으로 만든 패브릭 부츠와 나무 굽으로 된 클로그, 엄지발가락만 끼우는 플립플랍 샌들 등으로 상품군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양털부츠만 있는 줄 알았던 고객들은 의외의 제품에 놀라워했다.

어그는 투박한 부츠라는 편견

어그컬렉션 봄 신상품 ‘마르셀라’

2010년 어그가 구두 브랜드 지미추와 협업을 한 것 또한 의외의 사건이었다. 세련된 디자인의 지미추와 편안하고 따뜻한 어그가 만난다면. 다들 어떤 구두가 나올지 궁금해했다. 일부 언론은 하이힐이 달린 어그부츠 사진까지 내보냈다.

예상을 뒤엎고 두 브랜드의 화학적 결합은 성공적이었다. 양사 디자이너가 함께 만든 제품은 2010년 가을 전 세계 지미추와 어그 매장에서 판매되며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징이 박힌 스터드 장식의 만다 부츠는 고가(795달러)에도 많이 팔렸다.

어그 본사의 인터뷰룸에서도 뭉툭한 어그부츠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화려한 디자인의 신발이 진열돼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이탈리아에서 100% 핸드메이드로 제작한 ‘어그 컬렉션’. 어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럭셔리 제품군이다. 가격대도 20만∼40만 원대인 어그 부츠보다 3배가량 비싼 편이지만 라이딩 부츠와 파이톤과 가오리 가죽의 샌들이 인기를 끌었다.

지미추와의 협업에서부터 어그 컬렉션까지…. 어그부츠로 굳어진 이미지를 고수하지 않고 세련되고 고급스러움을 불어넣으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리시웨인 사장은 ‘좋은 신발’에 대한 기준을 얘기했다. “좋은 신발이란 스타일과 편안함, 그 어떤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는 신발이죠. 그런 면에서 어그가 답이라고 생각해요. 어그부츠를 통해 편안함을 경험한 사람들은 멋진 스타일까지 겸비한 어그 신발로 세련됨과 편안함을 모두 누릴 수 있으니까요.”

어그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편견

(왼쪽부터)여성용 ‘나디아’, 남성용 ‘엠파이어’, 키즈용 ‘미니 베일리 버튼’

어그는 지난해 미식축구 선수 톰 브래디를 광고 모델로 내세웠다. 모델 지젤 번천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브래디는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쿼터백. 어그가 그를 간판 모델로 내세운 것은 남성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는 뜻이다.

어그의 남성 제품은 양털부츠가 기본인 여성과 많이 다르다. 남성들에겐 슬리퍼와 방수 가죽에 종아리 부분이 십스킨으로 된 가죽 부츠가 인기다. 하지만 어그에게는 남성을 위한 제품 개발보다 ‘어그=여성을 위한 브랜드’ 공식을 깨는 게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어그는 지난해 여러 차례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실시했다. 여기서 내린 결론은 남자들이 여성을 위한 쇼핑공간에서 쇼핑하기를 꺼린다는 것이었다. 6월 새롭게 문을 여는 뉴욕 매디슨애버뉴 매장은 남성시장을 위한 어그의 이색 실험 무대가 될 것이다. 남성매장과 여성매장의 입구를 분리했기 때문이다. 남성 전용 입구로 들어서면 남성 제품이 진열된 매장이 펼쳐진다. 어그는 전 세계 매장을 남성 친화적인 공간으로 꾸미는 데 집중하며 지난해에는 매장 쇼윈도에 브래디 선수를 비롯한 남성 사진을 배치했다. 리시웨인 사장은 “향후 2년 내 전체 매출액의 20%를 남성 제품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하고 있는 키즈 라인도 어그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양털부츠와 슬리퍼 위주였던 키즈 제품을 올가을부터 부츠와 스니커즈 등으로 확대한다. 러그 베개 애완동물용품 등 홈패션 라인도 추가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