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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보면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면앙정은 송순(1493∼1583)이 1533년에 지은 정자다. 맹자의 진심장(盡心章)에 보면 ‘우러러(仰)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고, 숙여서(俯)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송순은 이 두 문장의 첫 글자를 따오면서 부(俯)자를 같은 ‘숙이다’는 의미인 면(면)자로 바꾸어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러고 보니 맹자의 원래 의도인 자기성찰의 의미보다는 좀 더 호방하고 유쾌한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호남의 유림들은 철학자보다 문학가에 가깝다. 그리고 그 이름대로 면앙정은 정말 호쾌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면앙정에 오르면(호남의 정자는 대부분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다), 영산강과 만나러 가는 오례천이 동서로 흐르고, 그 너머로 곡정들판이 눈이 모자라게 펼쳐져 있다.
집 바깥의 자연을 경영하는 수법들은 모두 다르지만, 집 자체에서 정면 세 칸에 가운데 한 칸을 방으로 꾸미는 것은 똑같다. 정자의 설계도뿐만이 아니라 송순의 ‘면앙정가’는 이후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의 집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면앙정은 오례천을 따라가다 제월산의 끝이 곡정들과 만나 절벽으로 떨어지는, 그 꼭대기로 오르는 길을 충분히 음미해야 한다.
송순이 이 땅을 살 때, 땅 주인은 이곳에서 옥대를 두른 학사들이 노니는 꿈을 꾸고 아들들을 교육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인은 따로 있었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