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ss-scape, oil on canvas, 최경문. 아트블루 제공
박스 밑바닥을 살펴보니 얇은 과월호 월간 수필 문예지 한 권과 출력된 A4용지 두 장, 그리고 손글씨로 적은 편지 한 장이 나왔습니다. 그 수필 문예지는 몇 년 전부터 제가 격월로 에세이를 연재하는 잡지인데, 2년 전에 수필 공모에서 당선된 그분의 등단작이 거기에 실려 있더군요. 그런데 저는 등단 신인 작가인 그분의 약력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팔순이 훌쩍 넘은 신인이셨어요!
고풍스러운 필체의 편지에서 그분은 잡지에서 제 글을 자주 봤다며 손이 아픈 것도 모르고 이 등을 만들었다고 쓰셨습니다. 그러며 마지막에 ‘늘 곁에서 불 밝히며 사랑받았음 좋겠습니다’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출력해서 보내준 글에는 이분이 풀잎이나 야생화나 낙엽 등을 그대로 눌러 말려서 여러 가지 생활용품에 응용하여 지인들에게 기쁘게 선물을 하시는 모습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압화(押花), 우리말로 ‘꽃누르미’라고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꽃누르미라는 단어,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생생하고 아름다운 꽃은 시간이 지나면 시듭니다. 꽃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위해서 화가들은 정물화를 그려 그 생기의 순간을 영원에 매어 두기도 합니다. ‘꽃누르미’도 아름다움을 연장하는 한 방법이겠지요.
위의 그림 속의 생생하고 아름다운 꽃은 마치 투명한 얼음에 냉동 보관되고 있는 것 같지요? 인간도 젊음과 청춘을 어딘가에 냉동 보관했다가 조금씩 녹여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제목은 ‘유리풍경’이라고 합니다. 제 눈에 얼음으로 보이는 이것은 유리인가 봅니다. 하긴 우리는 무언가 소중한 것을 보관할 때 유리병을 쓰긴 합니다.
저는 예술, 문학이라는 행위가 유한한 삶의 어느 생생한 순간을 무한으로 남기는 신성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학작품을 쓰는 작가의 영혼은 작품을 통해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 여든이 넘은 신인 작가인 그분의 꿈은 늙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청춘일 겁니다. 그분이 오래도록 꽃처럼 향내 나는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권지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