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비행 현장’을 들킨 일진들은 “집에는 비밀로 해 달라”는 말을 늘어놓는다. 얼마 전 구속된 경기 여주시의 한 일진도 “소년원 가는 건 괜찮은데 주변에 알려질 게 두렵다”고 했다. 타인의 자존심은 사정없이 뭉개도 자신의 품위가 구겨지는 건 치명적이다. “때리면서 미안할 때도 있지만 ‘찌질하게’ 살 수는 없지 않느냐”는 허영기로 버틴다. 중앙대 청소년학과 임영식 교수는 “청소년기엔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지고 특히 친구들에게 멋진 존재이고 싶어 한다”고 분석했다. 서열을 중시하는 학교에서 성적이 안 되면 힘으로라도 영향력을 확인하려는 욕구가 일진의 토대다.
▷성적으로 존재감을 발산할 수 없는 대다수 학생에게 일진은 공포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일진들이 입는 60만 원대 노스페이스 점퍼가 학생들의 ‘워너비 아이템’이 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어른들이 사회에서 잘나가고 싶듯 아이들도 학교에서 폼 잡고 싶다. 일진 아래로는 이들을 호위하는 이진 삼진이 포진해 있다. 일진이 전학을 당하거나 소년원에 가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마이너리그 선수처럼 이들이 빈자리를 메운다. 사람이 바뀔 뿐 일진은 계속된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려면 ‘죽을 각오’가 필요한 이유다.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