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이 쓴 화제의 책 ‘미국이 만든 세계’ 오바마 밑줄 쳐가며 본다는데
로버트 케이건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의 신작 ‘미국이 만든 세계(The World America Made)’가 전환기 미국 리더십의 본질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14일 발간 예정으로 아직 전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포린폴리시 등 주요 언론이 내용을 앞다퉈 소개하고 있다.
케이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의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의 핵심 이론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현재 공화당 대선 경선 선두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선거캠프에서 외교정책 특별보좌관으로 외교정책 입안을 총괄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외교정책 자문단의 일원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아내 빅토리아 뉼런드는 클린턴 장관이 지휘하는 국무부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이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뉴리퍼블릭이라는 보수 매체에 13쪽에 걸쳐 소개된 요약본을 탐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부터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이 주요 내용을 밑줄까지 쳐가며 읽었고 측근들과 책 내용에 대해 심층 토론을 벌였다고 전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강조한 ‘미국의 리더십 회복’ 대목이 책의 중심사상과 일맥상통한다. 토머스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PBS와의 인터뷰에서 케이건의 저서를 가리키며 “대통령의 외교적 비전에 큰 영향을 줬다”고 밝혔다.
이 책은 미국 안팎에서 제기되는 미국의 영향력 퇴조에 대해 “미국의 군사 정치 경제적 리더십은 쇠퇴하지 않았다”고 일침을 놓는다. 미국은 글로벌 리더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주장이다.
케이건은 우선 미국이 지금까지 글로벌 리더의 역할을 하긴 했지만 절대 권력을 휘두른 적이 없으므로 과거가 ‘미국의 세기’였다고 보는 시각은 과대평가됐다고 지적한다. 즉 절대파워를 가진 나라가 아니라 늘 시대적으로 옛 소련, 일본, 중국 등과 대결해가며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이다. 이어 케이건은 미국이 이렇게 경쟁국들과 싸워가면서 만든 세계질서가 평화적이고 영속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민주적 정치제도, 자유시장경제, 반보호무역주의 등의 가치 속에서 세계가 큰 전쟁 없이 평화적 시대를 구가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 러시아 등 새로운 파워가 미국을 제치고 글로벌 리더로 자리 잡는다면 미국이 만든 평화적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위험을 세계가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책의 내용도 화제지만, 네오콘 이론가 출신인 케이건의 주장이 오바마 백악관에서도 공감을 얻는 것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공화 민주 양당의 시각이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케이건은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와의 인터뷰에서 “외교정책에 관한 한 공화 민주 진영의 시각은 별다른 차이가 없다”며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부시 전 대통령의 정책과 크게 다른 점이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타임지 최근호는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가 미국의 역할이라는 ‘빅 아이디어’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 결국은 엇비슷한 외교 인력 풀과 사상들이 겹치는 ‘스몰 월드’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