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원 도쿄특파원
한국의 일부 언론을 포함해 외신들은 “핵분열 재개 우려”라고 보도했지만 일본 언론은 비교적 침착하게 반응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온도 표시한계인 400도마저 넘어버린 것은 온도계 고장 탓임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비상사태는 결국 도쿄전력이 온도계 고장을 선언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도쿄전력은 지난해와는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대처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냉각수 주입량을 늘리고 핵분열 억제용 붕산을 주입하면서도 온도계에 이상이 있을 개연성에 무게를 뒀다. 도쿄전력의 설명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격납용기 외부에는 온도계가 3개 있는데 이 중 유독 한 개만 온도 변화가 심했다. 온도가 100도 가까이 올랐다면 냉각수가 끓어 수증기가 나와야 했지만 그런 예후도 없었다.
‘신뢰의 사회’로 불리던 일본에서 이 같은 불신은 지난해 학습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이 줄줄이 폭발했을 때 원전 당국이 보여준 총체적 부실과 책임회피에 대한 불신이 일본인들의 마음에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도쿄전력은 사고 보상비로 이미 1조6000억 엔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다. 조만간 1조 엔이 추가로 투입된다. 한때 일본 최고의 기업신뢰도를 자랑하던 도쿄전력은 이제 ‘양치기 소년’에 ‘혈세 먹는 괴물’로 전락해 버렸다. 위기 대처에 치명적 약점을 드러낸 도쿄전력이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방사성물질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만큼이나 오랜 세월이 걸릴 것 같다.
김창원 도쿄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