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가수·작가
음악을 매개로 좋아하는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꿈이 좀 더 탄탄한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 음반을 만들어 해외 시장에 보내고 인디든 메이저 마켓이든 상관없이 유럽 순회공연도 하고 일본 투어도 하는 꿈이 이루어졌으면. 요즘 아이돌 가수들을 보면 쉽게 한류 붐을 타고 해외 시장을 개척한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나는 싱어송라이터로서 나만의 색깔 찾기에만 10년을 보냈다. 방황의 시간 10년도 보탰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앨범을 만드는 방식을 터득하기 위해 레이블도 직접 만들면서 몇 년의 시간을 더 보냈다. 올해 데뷔 25주년을 맞게 된 나는 다듬어지는 준비의 시간을 25년 가진 셈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예술가이니까.
스타가 되기보다는 자신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고 어느 정도는 이룬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의 음악이 더 넓은 세계에서 인정받기를 바란다. 그 소망이 조금씩 윤곽을 보이는 요즘이다. 해외 음반의 유통과 수입을 오랜 시간 해 온 한 레이블이 나의 음악을 세계 시장에 알리고 싶다는 뜻을 밝혀왔다. 조만간 그렇게 꿈꾸던 런던과 뉴욕의 음악 페스티벌에 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며칠 전 휘트니 휴스턴이 불행한 인생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내가 진행하는 라디오 팝 프로인 ‘골든 디스크’팀도 당연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릴 적 너무 고음으로 화려하게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나중에 다시 부를 수가 없게 돼 정신적 고통에 휩싸인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같은 유대인들은 과대평가된 것 아니냐, 흑인들에 비해 백인들의 삶이 더 안정적인 것 아니냐 등등. 나도 한때 스타의 등용문을 통과해 스케일이 큰 노래들을 불렀지만 싱어송라이터의 길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 방향을 선회한 기억이 난다. 세계 시장에 나간다고 해도 아이돌들에 비해 화려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에는 진정성 있는 음악을 원하는 마니아가 많다. 여러 나라에 한 무리의 팬들이 있다면 충분히 재미난 활동을 할 수 있을 테다.
한순간에 큰 불꽃을 일으키고 사그라지고 싶지는 않다. 오래오래 묵직한 무쇠솥처럼 음악을 해나가고 싶다. 그런 좁은 문을 통과하는 길이 나에겐 필생의 업이라는 생각이다. 가늘고 긴 활동이 언젠가 큰 불꽃놀이로 축제가 열릴 순간이 바로 나의 버킷 리스트다. 다만 너무 빨리 이루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버킷 리스트가 다 이루어지고 나면 또 다른 꿈을 꾸기 힘들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 매일 아침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한 걸음씩 걸어가는 이 하루하루가 모이면 언젠가는 큰 미래가 열릴 것이다. 미래는 하루하루의 삶이라는 조각들로 엮어진 퍼즐그림 같은 것 아닌가.
이상은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