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30년 공직생활에 이런 선거는 처음”
신 차관은 그제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권의 포퓰리즘 행태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여야가 야합해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저축은행특별법과 재원 고민도 없이 남발되는 복지 공약 등을 거론하며 “공무원 생활을 30여 년 하면서 여러 선거를 봤지만 요즘이 가장 심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지속 가능성 없는 과잉 복지는 결국 후손에게 큰 부담을 준다는 말도 덧붙였다. “재벌 문제를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대기업을 너무 몰아세우면 국내에 투자하지 않고 외국에만 투자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신 차관은 “과거에도 선거가 있는 해는 공약 남발이 있었지만 여야 모두 최소한의 재원 문제는 고민했는데 올해는 딴판”이라고 우려했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번 발언 때문에 어느 쪽이 정권을 잡아도 장관되는 게 어려워지지 않겠느냐”고 묻자 “차관까지 한 사람이 문제가 뻔히 보이는데 다음을 신경 쓰느라 소신을 굽히고 싶진 않다”고 했다. 현장기자 시절 알았던 경제관료 중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사람을 꽤 봐왔던 터라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2002년과 2007년 대선 때 경제정책 담당 차장과 경제부장으로 일한 경험을 통해 나는 한국에서 선거가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실감했다. 이런 위기감 때문에 올해 총선과 대선이 미칠 수 있는 경제 리스크를 경고하는 글을 지난해 몇 차례 썼다. 하지만 막상 2012년이 시작되고 두 달도 안 된 오늘까지 정치권의 막가파 행태를 지켜보면서 “정말 이러다가는 우리나라가 거덜 나겠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요즘 한국 정당들은 과거 어떤 시절보다도 더 왼쪽으로, 그리고 무책임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축이 된 통합진보당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정통 야당의 적자(嫡子)를 자부하는 민주통합당과, 박정희의 산업화 세력과 김영삼의 민주화 세력의 정신을 잇는다는 새누리당도 전신(前身)인 여러 정당과 비교할 때 좌향좌 움직임이 뚜렷하다. 그 와중에 멍들어갈 경제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정치권發 정책 거품 거듭 경고해야
공직자들이라면 적어도 우리 경제의 추락을 막아야 한다는 대의(大義)에는 공감하리라고 믿는다. 요즘 한국 정치권의 분위기에 일정 부분 제동을 못 걸면 어느 해외 학자의 글에서 읽었던 ‘터널 속의 빛’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터널 저쪽에서 보이는 빛은 광명천지의 빛이 아니라 참사(慘事)를 예고하면서 이쪽으로 질주해오는 기관차의 불빛일지 모른다.”
권순활 편집국 부국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