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정성희]초등생과 ‘초딩 문화’

입력 | 2012-02-17 03:00:00


‘고×로 만들어 버릴 거야.’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이 자신에게 온 문자메시지를 보고 ‘고×’가 뭐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는 남자에게나 쓰는 욕설이다. 문자를 보낸 친구는 범생이(모범생)였다. 초등학생 자녀는 부모에겐 아직 어리고 귀여운 존재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불특정 다수의 초등학생을 일컫는 ‘초딩’들의 행패는 사이버 깡패를 연상시킨다.

▷지난해 50대의 포스텍 교수가 초등학생 딸아이에게 욕설 문자를 보낸 남자 아이를 학교로 찾아가 무릎을 꿇게 하고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어린 초등학생을 때린 것에 책임을 지고 해당 교수는 교수직을 사임했다. 사건 직후 이 교수는 남자 아이가 딸아이에게 2분꼴로 한 번씩 보낸 문자메시지 전문을 공개했다. 그 현란한 욕설의 향연이라니. 험악한 욕설이 ‘초딩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광주지방경찰청이 학교폭력이 의심되는 인터넷 카페를 대상으로 개설 목적을 조사했더니 누군가를 따돌릴 목적의 ‘안티 카페’ 개설자 가운데 50%가 초등학생이었다. 중학생(41%) 수준을 넘어섰다. 카페를 개설한 동기는 ‘특정 학생의 외모나 행동이 미워서’라는 응답이 40%를 차지했다. 경찰이 직접 불러 조사한 10여 명의 아이는 가정과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드러낸 적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지난해 대구 중학생을 괴롭혀 자살에 이르게 한 가해 학생들도 중학교 1학년 이전까지는 폭력 성향 등 어떤 문제 행동도 없었다고 한다. 악(惡)의 평범한 얼굴에 새삼 놀라게 된다.

▷남학생 대다수가 초등학교 시절 야한 동영상(야동)을 처음 접한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학부모는 “우리 아이만큼은 절대 그런 걸 보지 않는다”고 굳게 믿는다. 현실과 학부모 인식에는 큰 격차가 있다. 초등학생들은 사이버상에서 세력을 이루어 공격을 한다. 과거 여성가족부의 안티그룹은 남성이었지만 요즘은 초등학생이다. 음반의 ‘19금(禁)’ 심의를 하고 게임을 규제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여성부의 홈페이지는 초등학생들의 욕설로 도배돼 있다시피 하다. ‘초딩’이 무서운 것은 자신들이 하는 짓이 잘못인 줄 모른다는 점에 있다. ‘초딩’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잠시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