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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한국기업 세계를 품다] 베트남에 ‘사랑의 집’ 지어주는 포스코

입력 | 2012-02-17 03:00:00

베트남에 ‘사랑의 집’ 지어주는 포스코
빗물 새는 양철집이 하얀 벽돌집으로… 베트남 빈민촌의 기적




《 열일곱 베트남 소녀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의아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응우옌탄뚜엔 양은 울먹이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앉았다 일어서면 어지럽고 숨쉬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5개월 전에 혼자 병원에 갔죠. 심장 쪽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하는데 약을 사먹을 형편이 안 돼 그냥 버티고 있어요. 4, 5일에 한 번씩 증세가 찾아와 겁나긴 하지만….” 딸의 얘기에 어머니 응우옌탄뚜이 씨(44)와 아버지 응우옌탄따이 씨(49)도 눈시울을 붉혔다. 이들은 딸이 가끔 아픈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혼자 병원에 갔다는 것도,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딸은 “어머니도 척추에 이상이 있지만 돈 때문에 수술을 못하고 있는데 나까지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았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
○ “꿈같은 집에 살게 되다니”

한국에서 시작된 ‘새마을운동’이 베트남까지 확산됐다. 포스코는 베트남의 한 마을과 자매결연하고 새로운 마을로 탈바꿈시켜 주는 ‘사랑의 집짓기’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사랑의 집짓기 공사를 하는 포스코베트남 직원들과 현지 근로자들. 포스코 제공

14일(현지 시간) 베트남 호찌민에서 동남쪽으로 약 90km 떨어진 바리어붕따우 성 떤탄 현 떤호아 읍의 빈민촌 프억히엡.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 얼기설기 양철로 지붕을 얹은 집들 앞에 주민들이 나와 쉬고 있었다. 짚으로 간신히 지붕을 엮은 집들도 보였다. 집 앞 긴 대나무에는 빨래가 어지러이 널렸고, 하수구는 대부분 오물로 막혀 있었다.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가 잦은 우기(4∼10월)에는 발목까지 물이 차오를 때도 많다고 한다.

마을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외딴섬처럼 하얀 벽과 파란 대문으로 단정하게 정리된 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바리어붕따우 성에 공장이 있는 포스코베트남이 올해 초 만들어준 다섯 채 가운데 하나였다.

집주인인 응우옌탄따이 씨는 건설업 일용직 근로자다. 가끔 일거리가 있을 때만 돈을 벌 수 있어 수입이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부인인 응우옌탄뚜이 씨도 굴을 까는 일로 생계를 돕는다. 그나마 최근엔 허리가 아파 쉬고 있다. 큰딸 응우옌응옥한 씨(20)는 집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봉제공장에 출근해 집에 없었다.

막내딸인 응우옌탄뚜엔 양은 중학교 1학년에 다니던 6년 전 학업을 그만뒀다. 온 가족이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도 학비를 댈 수 없어서였다. 집에서 굴 까는 일을 돕다가 지금은 몸도 안 좋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가족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비가 올 때마다 지붕에서 빗물이 새는 바람에 비옷을 입고 잠을 자야 했다. 그러다 ‘기적’이 일어났다. 지난해 말 포스코가 시작한 ‘사랑의 집짓기’ 대상자로 선정돼 올해 1월 3일 새 집을 선물 받은 것이다. 응우옌탄따이 씨는 “꿈도 못 꿨는데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응우옌탄뚜엔 양의 소원은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는 것이다. 이날 그의 딱한 소식을 전해들은 포스코 본사의 사회공헌팀은 조만간 소녀를 서울로 불러들여 수술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제 그는 또 한 번의 기적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새집도 생겼으니 건강을 되찾으면 언니처럼 일해서 부모님께 돈도 벌어드리고 효도하고 싶어요.”

○ 베트남의 새마을 만들기


포스코베트남이 지어준 ‘사랑의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응우옌탄따이, 응우옌탄뚜이 씨 부부와 딸 응우옌탄뚜엔 양(왼쪽부터). 바리어붕따우=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베트남에 도입할 수는 없을까요.”

포스코베트남은 2009년 5억2000만 달러(약 5800억 원)를 들여 자동차나 전자제품에 쓰이는 얇은 강판을 만드는 냉연(冷延) 공장을 베트남 바리어붕따우 성에 세웠다. 연산 120만 t의 동남아 최대 규모다.

이런 포스코베트남이 현지 마을과 자매결연을 하게 된 계기는 우연에 가깝다. 바리어붕따우 성 인민위원장이 2010년 베트남에서 출간된 ‘철강왕 박태준’이라는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자서전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뒤 포스코 측에 ‘베트남에 새마을을 건립해주면 어떻겠느냐’고 요청한 것이다. 박 명예회장은 1992년 베트남 호찌민에 포스코 최초의 해외 생산법인인 컬러강판 생산공장 ‘포스비나’ 설립을 주도해 베트남에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 2010년 하노이에서 열린 자서전 출간 행사를 위해 직접 베트남도 방문했다.

인민위원장의 요청을 듣고 포스코베트남 임직원들은 회의 끝에 자매결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한 마을과 협약을 맺고 그 마을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함께 펼쳐 새로운 마을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대상은 베트남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인 떤호아 읍이었다. 마침 떤호아 읍은 포스코베트남에서 차로 15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사회봉사 활동을 하기에도 적당했다.

포스코베트남은 지난해 10월 14일 떤호아 읍과 자매결연 협약식을 하고 활동에 들어갔다. 포스코베트남의 임직원 수는 한국인 29명을 포함해 총 650명. 협약식 이후 남식 법인장을 포함한 임직원 50여 명은 근무하지 않는 날을 잡아 청소, 하수도 정리 등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는 ‘사랑의 집짓기’ 행사를 벌여 현지 근로자들과 함께 떤호아 읍의 두 마을, 프억히엡과 프억렁에 다섯 채의 집을 지었다. 보통 외벽에 벽돌이 드러나 보이는 미완성된 새 집을 지으려면 3000만 동(VND·약 163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포스코 측은 외벽까지 마무리할 수 있도록 채당 4500만 동(약 245만 원)을 지원했다.

남 법인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거창한 모토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동행하자’는 차원에서 단순히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직접 봉사하고 참여하기로 했다”며 “직원 교육 측면에서도 효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포스코베트남은 신입사원을 뽑으면 1주일 안에 무조건 하루는 사회봉사를 하도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의무화했다. 지난해에는 초중학생 100여 명에게 장학금과 통학용 자전거를 선물하기도 했다.

○ “나중에 포스코에서 일하고 싶어요”


포스코베트남의 글로벌 사회공헌은 현지 사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바리어붕따우 성의 외국기업 전담 우호협회장을 맡고 있는 쩐민항 씨(55)는 “포스코베트남, 포스코건설 등 베트남에 있는 포스코 패밀리(12개 법인)가 사회봉사뿐 아니라 고용창출에서도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며 “베트남 지도층도 포스코에 아주 우호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포스코의 ‘사랑의 집짓기’ 행사를 소개한 현지 일간지 ‘바리어붕따우’ 1월 4일자 기사. 포스코 제공

14일 만난 쩐 협회장은 기자에게 포스코의 사회공헌 활동을 자세히 소개한 베트남 북부지역 최대 주간지(50만 부 발행) ‘베트남타임스’의 기사를 보여주기도 했다. 올해 1월 3일 사랑의 집 전달식이 열린 다음 날 현지 일간지 ‘바리어붕따우’도 사진과 함께 포스코베트남의 사회공헌 노력을 독자들에게 알렸다.

떤탄 현 인민위원회에서 포스코와 마을, 학교, 보육원 등을 연결해주는 일을 맡은 팜반냠 씨(52)는 “포스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수시로 찾아와 감사의 뜻을 나타내며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면 포스코에 다니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고 전했다.

바리어붕따우=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 “돈만 주는게 아니라 몸으로 직접 봉사… 다른 외국 기업도 포스코 본받았으면” ▼


“포스코 베트남이 떤탄 현에 새로운 기업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외국 기업들도 포스코를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베트남 바리어붕따우 성의 레반쓰엉 떤탄 현 인민위원장(56·사진)은 포스코의 사회공헌 활동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베트남은 행정구역이 성(省), 현(縣), 읍(邑)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으로 치면 각각 도, 구, 동 정도에 해당한다. 현의 인민위원장은 구청장 격이다.

전체 인구가 약 13만 명인 떤탄 현의 읍 가운데 극빈층이 몰려 사는 떤호아 읍은 한 가구의 연간 평균소득이 약 750만 동(VND·약 37만 원)에 불과할 정도로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열악하다.

“다른 외국 기업들은 사회공헌을 하더라도 지원금을 내고 나 몰라라 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포스코는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집을 지어준 뒤 지속적으로 관리해 줍니다. 학교에 장학금도 전달하고 깨끗한 생활환경을 위해 사장(법인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 나서서 정기적으로 마을 청소와 하수구 정비를 해주죠.”

이 때문에 포스코와 떤탄 현은 다른 외국 투자기업과 달리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석 달에 한 번씩 포스코와 회의를 합니다. 포스코는 회사 현황을 알려주면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우리에게 말하고, 떤탄 현은 베트남 정부의 정책이 바뀌면 포스코에 알려주고 공장 운영의 어려움은 없는지 묻습니다. 서로의 신뢰가 없으면 이런 관계가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는 “포스코처럼 기업과 마을이 자매결연을 맺는 것 외에도 한 회사가 한 학교를 도와주는 ‘1사 1교’ 사업도 구상 중”이라며 “다른 외국 기업에도 포스코가 벌이고 있는 사회공헌 모델이 확산되도록 지속적으로 권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바리어붕따우=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