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수년 전부터 북-중 접경지역 마을에 탈북자를 집단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지정하는 등 대량 탈북사태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중국이 북한 내부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 중국과 북한 당국이 탈북자 발생을 막기 위해 대응 수준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 중국, 대량 탈북사태에 대비 강화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2010년경부터 두만강과 압록강 상류의 북-중 접경지역 마을에 탈북자 수용시설을 지정하고 있다.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폐촌을 통째로 수용시설로 지정해 관리하거나 일부 마을에서 폐교와 폐관공서, 창고 등 쓰지 않는 큰 건물을 수용시설로 지정해 함부로 훼손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의 두만강 상류 지역에서는 허룽(和龍) 시 충산(崇善) 진(한국의 읍에 해당) 및 난핑(南坪) 진, 룽징(龍井) 시 싼허(三合) 진 등 30여 곳에 있는 건물 100여 채가 수용시설로 지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압록강 상류에도 같은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지역은 국경선이 좁은 개울에 불과한 데다 광활한 산악지역이어서 탈북이 상대적으로 쉽고 감시도 소홀해 탈북루트로 활용돼 왔다. 이곳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 마을 사람들이 한국 또는 도시로 떠나면서 빈 건물이 늘어나 이를 수용시설로 지정하는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두만강 상류 지역에만 적어도 2만 명 이상의 탈북자를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 수용시설로 지정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더구나 이 지역은 산세가 험하고 외부와 연결된 길이 제한적이어서 탈북자를 수용하고 감시하기 편한 지리적 강점도 있다.
이와 함께 중국 당국은 이 지역의 낡은 철조망을 교체 및 강화하고, 새로 철조망도 설치하고 있다. 폐쇄회로(CC)TV와 인민해방군 감시초소를 늘리고 도로 검문검색도 강화했다고 한다. 중국에 잠입한 탈북자들에 대한 단속 수준도 눈에 띌 정도로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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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초까지만 해도 양국 주민들은 관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이 지역을 오갔다. 하지만 북한의 내부사정 악화로 인한 탈북자 증가와 핵실험 등에 따른 북-중 관계의 변화 이후 국경경비가 강화돼 왔다. 그러다 중국은 2008년 8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뇌중풍 발병으로 북한 내부의 소요사태 발생 가능성이 현실화되자 201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대량 탈북자 발생에 대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북한, 변경지역은 ‘3호담당제’설북한도 김정은 체제 출범 이래 탈북자 차단에 더욱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경비가 소홀했던 양강도의 북-중 국경지역에 인민군 초소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또 북한 쪽에서도 일부 지역에 철조망을 치고 있으며 국경을 넘는 휴대전화 통화를 차단하기 위한 전파 방해도 이전보다 훨씬 심해졌다고 한다.
최근 홍콩의 펑황(鳳凰)주간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의 지도 아래 북-중 변경지역에는 ‘5호담당제’가 아닌 ‘3호담당제’를 실시한다”면서 “주민 간의 상호감시 강도를 높여 한 명이라도 안 보이면 바로 보안부서나 인민반장(한국의 동장 격)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전문 인터넷매체인 데일리NK도 2010년 12월 같은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대북 소식통들은 “행방불명자만 발생해도 모두 다른 지역으로 추방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탈북자들이 압록강 상류 등지에서 탈북 도중 인민군에게 사살됐다는 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