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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권재현]광개토太王의 칭호

입력 | 2012-02-20 03:00:00


올해는 고구려 광개토태왕 서거 1600주년이다. 역사교과서에선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라 그를 광개토왕 또는 광개토대왕으로 부른다. 하지만 ‘태왕사신기’(2007년)를 필두로 최근 사극에선 광개토태왕으로 호명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사극에서 고구려의 모든 왕을 태왕으로 부르는 추세다. 이 때문에 왕 대왕 태왕의 관계를 원급 비교급 최상급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위대한 왕이란 뜻으로 대왕이면 충분하지 태왕은 뭐란 말인가란 냉소적 반응도 나온다.

▷태왕은 왕이나 대왕과 급이 다르다. 중국의 황제(皇帝)에 필적하는 칭호다. 제후(왕)를 거느린 제국의 왕, 왕 중의 왕이란 뜻이다. 중국에서도 똑같이 왕으로 썼다가 진시황 때부터 고대 전설적 왕의 이름을 따 황제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대륙의 중심부를 뜻하는 중원을 장악한 왕조의 왕은 모두 황제를 자처했다. 중세 유럽의 중심부를 장악한 신성로마제국 통치자의 칭호로 로마황제의 칭호인 엠페러 또는 카이저를 쓰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광개토태왕의 묘비명에 적힌 그의 시호(諡號)다. 시호는 왕이 죽은 뒤 붙이는 칭호다. 국강상은 장지(葬地), 광개토경평안은 영토를 넓히고 평안을 가져왔다는 그의 업적, 호태왕은 좋은 태왕이란 미칭(美稱)으로 분석된다. 비문을 보면 정벌을 준비할 때는 왕, 정벌이 완료됐을 때는 태왕으로 표기했다. 선대 고구려 왕들에겐 태왕이란 칭호를 붙이지 않았다. 왕과 태왕을 뚜렷이 구별했다는 증좌다. 신라 진흥왕도 삼국의 패자로 떠오른 뒤 태왕이란 칭호을 썼다.

▷지난주 서울에서 ‘고구려 광개토왕과 동아시아’라는 한국고대사학회 주최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중국 베이징대 뤄신(羅新) 교수는 광개토태왕을 영락태왕으로 불러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영락(永樂)은 광개토태왕이 쓴 연호(年號)다. 연호란 황제 치세 기간의 칭호다. 결론만 보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뤄 교수는 영락이 독자적 연호가 아니라 생전의 왕명(王名)일 뿐이며 태왕은 고구려 왕의 일반 관칭(官稱)이라고 주장했다. 은근슬쩍 태왕의 의미를 폄하한 것이다. 명실상부한 태왕을 태왕으로 부르지 않는 것은 인색이고, 반대로 모든 고구려왕을 태왕으로 부르는 것은 남발이다.

권재현 문화부 차장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