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자살은 어른에 대한 징벌이자 학교에 대한 복수”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교육현장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했다. 자살한 중학생의 유서를 읽으며 부친이 돌아가신 이후 가장 많이 울었다고 한다. 대구=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지난해 12월 20일 자살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유서가 있다고 하는데 경찰이 가지고 갔다. 나중에 유서를 읽어보고 참담한 마음에 한없이 울었다. 맞춤법 하나 틀리지 않고 유서를 넉 장이나 쓸 수 있는, 반듯하고 착실한 아이였다. 자살 전날 엄마의 휴대전화에서 (자신을 잊으라는 의미에서) 자기 이름을 지우고 초저녁에 유서를 썼다. 그의 죽음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에 대한 징벌이고, 학교와 교육에 대한 계획된 복수라는 생각이 든다.”
자식 키우는 처지에서 그 유서를 읽고 울지 않을 수 있을까. 그 학생은 죽으려고 결심한 다음에도 자신보다 가족을 걱정했다. ‘제가 한 짓도 아닌데 억울하게 꾸중을 듣고 매일 맞던 시절을 끝내는 대신 가족들을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제가 없다고 해서 슬퍼하시거나 저처럼 죽지 마세요. 저의 가족이 슬프다면 저도 분명히 슬플 거예요. 부디 제가 없어도 행복하길 빌게요. PS. 부모님께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다는 말 못 전했지만 지금 전할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2010년 7월 교육감 취임 이후 폭력신고를 활성화하고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강화하는 바람에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다. 학교폭력은 어느 곳에나 있다. 취임 첫날의 첫 보고가 성폭행 사건이었다. 여고생 한 명이 시험이 끝나서 자신이 졸업한 중학교에 놀러왔다가 후배 중학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여학생은 지적 장애가 있었다. 중학생 다섯 명이 수업 도중 차례로 자리를 비우며 화장실에서 번갈아 성폭행했지만 수업을 진행하던 교사는 아이들이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가는 줄로만 알았다. 이 사건은 가해자들이 성폭행 사실을 학원에서 자랑하다가 알려졌다. 보고를 듣고 참담한 마음에 이튿날 아침 사건이 발생한 학교를 찾아갔다. 학교 관계자들이 ‘이만한 일로 교육감이 학교를 방문했느냐’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성폭력이든 학교폭력이든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학생 정서·행동발달 검사’와 ‘친한 친구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나이 어린 가해학생들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질 수 있는가.
“가해한 애들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말썽 한 번 피우지 않았던 아이들이다. 자살한 학생과 가해학생 중 한 명은 학기 초에 서로 ‘가장 친한 친구’로 이름을 써낸 사이였다. 모두들 결손가정 출신이 아니다. 처음에 가벼운 장난으로 시작했던 일이 또 다른 학생이 합류하면서 이상하게 관계가 왜곡됐다. 가해학생의 게임 아이템이 해킹당하면서 본격적인 괴롭힘이 시작됐다. 물고문 등 자살한 학생을 괴롭히던 수법도 게임 내용과 똑같았다. 가해학생들은 일진(一陣)처럼 다른 학생을 괴롭히지도 않았다. 아이들의 감정이 마비된 것 같다. 아이들은 경찰 조사를 받을 때도 담담해하다 수갑을 차던 날에야 눈물을 보였다. 그제야 현실을 인식한 것이다. 중산층 자녀까지 스며든 폭력문화에는 폭력적 내용의 게임에 책임이 크다.”
―형사처벌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보나.
우 교육감은 14세 미만의 폭력 학생들은 자신들이 어떤 짓을 저질러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범죄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예방 효과를 거두려는 목적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다른 학생을 괴롭힌 경우 학교가 학부모를 소환해도 불응하면 그만이다. 생업에 종사하는 학부모가 바빠서 못 오겠다는 데 할 말이 없다. 가정환경 조사도 못하니 교사가 학생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다. 학년이 바뀔 때쯤에 교사가 학생을 파악하게 된다. 등교정지 처분은 별 효과가 없다. 그래서 학교 연락이나 질문에 학부모가 성실하게 응답하도록 하는 학부모소환제가 필요하다. 학부모가 학교의 소환을 통보받아 자녀의 학교에 가야 할 때에는 직장에서 유급휴가를 주도록 근로기준법을 바꾸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마을이 필요하다’는 게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자살 중학생의 책상을 치우라고 했다던데….
“청소년 자살은 충동적이고 연쇄적이다. 요즘 학생들은 자살을 고민 해결의 최종병기로 생각한다. 초등생 일기검사만 해도 자살에 대한 찬양, 모방심리가 숱하게 나타난다. 사건 이후 가장 시급한 문제가 졸지에 친구를 잃고 충격에 빠진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이었다. 그래서 해당 중학교 전교생을 대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심리검사를 시행했다. 놀랍게도 자살 중학생 학급에서 자살 고위험군 학생이 6명이나 발견됐다. 2명에 대해서는 상담치료를 시행했으나 나머지 4명은 부모가 동의하지 않아 못했다. 그래서 책상을 치우고 꽃다발도 두지 못하게 했다.”
“일진회 같은 학교폭력에는 경찰이 개입하는 게 맞다. 지금처럼 학교폭력이 심각한 상황에서는 경찰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부모도 문제가 있다. 요즘 엄마들은 아이 키울 줄 모른다. 옛날 대가족 제도에서는 아이들이 잘못하면 집안 어른이 꾸짖었다. 이웃 어른들도 아이들이 잘못하면 ‘네 애비한테 말하겠다’고 하며 사실상 공동체가 육아를 담당했다. 지금 부모들은 예방접종 시기나 잘 알지, 자식 키우는 법을 모른다. 옆집 아이 학원 다니면 거기나 따라 보낼 줄 알지 부모 되는 법을 모른다. 학부모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것도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한꺼번에 모아서 하는 교육으론 안 되고 학교 급별로 부모 교육을 전문화 체계화해서 연간 몇 시간 수강을 의무화해야 한다.”
D중학교에서는 지난해 7월에도 여학생 한 명이 자살했다. 이 학생은 담임교사에게 학급 내 왕따 실태를 고발했는데 교사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벌을 주는 바람에 고발한 학생의 이름이 반에 알려졌다. 보복을 당할까 봐 고민하던 학생은 자살을 택했다. 교사가 좀 더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이 학생도 극단적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 자살학생의 부모들은 최근 학교와 교사를 상대로 8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학생인권조례가 최근의 학교폭력 사태에 어떤 영향을 주나.
“학생인권은 중요하지만 학생의 권리만 나열한 학생인권조례는 문제가 있다. 체벌을 못하게 한다면 학칙으로 정해도 충분하다. 교육 문제는 교육감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대구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대신에 학생인권과 의무, 학부모의 권리와 의무를 함께 담은 대구교육권리헌장을 공포하고자 했다. 공약이기도 한 교육권리헌장은 진보단체까지 참여해 1년 반의 논의 끝에 완성했다. 원래 지난해 12월 22일 선포할 예정이었는데 자살 사건으로 올해 3월로 연기됐다. 다른 것은 합의가 되었는데 머리 길이는 끝까지 합의가 어렵더라. 머리 길이는 많은 학교가 이미 자율화했다. 학교가 단속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학생부장들이 ‘머리 길이 규제’를 고집하는 것은 머리 길이 단속이 생활지도의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머리가 너무 길다’며 학생을 불러 조사하다 보면 담배도 뺏을 수 있는 것이다.”
우 교육감은 여교사의 급증이 생활지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현재 교대 사범대 입학에 3 대 7로 남학생 할당제를 시행하지만 임용 단계에서도 이런 비율 정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 간 뒤에도 상황 판단을 하지 못하고 ‘ㅋㅋㅋ’라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아 세상을 경악하게 했던 가해학생들에 대한 선고공판이 오늘 열린다. 13일 공판에는 자살학생의 어머니가 나와 “어른인 내가 그런 괴롭힘을 받았더라도 자살을 생각했을 것”이라며 “피고인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진술했다. 눈물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의 절규와 포승줄로 묶인 가해학생들의 앳된 얼굴이 우리 학교의 참담한 현주소다. 아이들이 폭력과 왕따에 병들고 있는데 어른들은 무상급식이니 인권조례니 하면서 교육을 정치로 오염시키기에 급급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