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영화 속 남이와 달리 이번 골프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애를 먹었다. 순간 최고 초속 15m의 강풍에 속절없이 휘청거리는 아름드리 야자수처럼 선수들의 스코어도 널을 뛰었다. 이 정도 바람에는 골프채를 고를 때 평소보다 3클럽 이상 차이가 나고 좌우로는 50야드까지 편차를 보인다. “바람은 피부에 닿거나 귀로 지나가는 느낌을 통해 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나무와 깃발을 통해 보인다.” 득도한 듯 대비책을 내놓았던 최경주마저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옥외 경기장에서 하는 스포츠 종목은 대부분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특히 양궁과 골프는 풍향과 풍속에 민감하다는 점에서 닮았다. 바람이 불면 오조준을 해야 하는 것도 똑같다. 그린이 과녁이라면 홀컵은 엑스텐(10점 만점 중에서도 지름 6.1cm가 정중앙)이라는 말도 있다. 원리가 비슷해서인지 유명 양궁인 중에는 유난히 골프 고수가 많다. ‘골프 지존’인 신지애는 초등학교 시절 양궁선수 경험이 골프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김경욱은 화살이 과녁 정중앙 초소형 카메라를 맞힌 ‘퍼펙트 골드’로 화제를 뿌렸다. 이 정도의 경지에 오른 신궁은 마음으로 활을 쏴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과녁을 꿰뚫는다고 한다. 어찌 활뿐이랴. 세상 살다 보면 이런저런 바람을 맞는다. 올해 같은 선거철에는 특히 심해진다. ‘뭔 풍(風)’으로 끝나는 신조어가 쏟아진다. 스포츠나 정치나 바람을 잘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바람둥이로 전락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부진에서 탈출하기 위해 한때 참선에 매달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다. 모든 건 올곧은 마음에 달려있는지 모른다. ―로스앤젤레스에서
김종석 스포츠레저부 차장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