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말 프랑스 모나코에서 뛰던 박주영(27·사진)은 리그 우승팀 닐로 이적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행으로 갑자기 진로를 바꿨다. 박주영이 예정대로 닐로 갔다면 어땠을까.
한국축구가 ‘박주영 딜레마’에 빠졌다. 최강희 축구대표팀 감독은 “벤치를 지키는 선수는 아무리 해외파라 해도 뽑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면서도 29일 오후 9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쿠웨이트와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마지막 경기 엔트리에 박주영을 올렸다. 이런 가운데 영국 일간지 메트로는 21일 아스널의 아르센 벵게 감독이 박주영을 노리치와의 2군 리저브 경기를 치르도록 내려보냈다고 보도했다. 안드레이 아르샤빈과 마루안 샤마크 등 공격수들과 함께 내려간 것으로 박주영은 최근에도 경기력 향상을 위해 리저브 경기를 뛴 적이 있어 신변에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박주영 자신과 쿠웨이트 경기를 앞둔 대표팀에 주는 ‘의미’는 크다. 박주영으로선 세계적인 명문 ‘아스널’이란 이름값 때문에 자신의 축구인생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사실 아스널은 박주영을 주전 공격수로 영입한 게 아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바르셀로나)와 사미르 나스리(맨체스터 시티) 등이 이적하자 공격수 수를 채우려고 뽑은 측면이 강했다. 제1 공격수는 꿈도 못 꿨고 제3공격수로 밀려 늘 벤치를 지켜야 할 신세였다. 실제로 박주영은 리그 단 한 경기에 출전해 10분 정도 뛰었을 뿐이다. 칼링컵 3경기에 뛰며 1골을 기록했지만 큰 의미는 없다. 전문가들이 “박주영이 주전으로 뛸 수 있는 닐로 갔다면 지금 다시 빅리그에서 손짓하는 등 주가를 높이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박주영은 대표팀에도 혼선을 주고 있다. 박주영은 최근 열린 중동 팀과의 대표팀 경기에서 3경기 연속 골을 넣었다. 최 감독이 ‘벤치멤버’ 박주영을 선발한 이유다. 하지만 쿠웨이트 경기를 앞두고 2군으로 떨어진 것은 최 감독의 마음을 다시 움직일 수 있다. ‘그래도 박주영인데 써봐야지’라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아스널은 박주영의 한국 대표팀 조기합류 요청을 거부하고 27일 합류할 수 있도록 해 컨디션을 점검할 수 있는 시간도 없다. 쿠웨이트에 지면 8회 연속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에서 최 감독은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잘해야 후반 조커가 유력하다. 문제는 박주영이 아스널에 남아 있는 한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이란 점이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박주영의 케이스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해외 진출 때 좋은 팀보다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그라운드를 많이 누빌 수 있고 대표팀에서도 빛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