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공안 체포땐 무국적자로 간주정부 인증땐 석방 가능성 높아
최근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소녀 A 양의 가족들은 14일 외교통상부를 찾아가 “제발 내 딸이 한국 국민이라는 서류를 떼달라”고 호소했다. 전날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온 A 양이 “공안 관계자가 한국인이라는 영사관의 증명서류를 가져오면 석방해 주겠다고 한다”고 전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A 양은 북한 사람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서류를 발급해 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수년 전 탈북해 한국에 정착한 부모들은 “우리 딸은 미성년자이고 부모가 다 한국에 살고 있다”면서 “우리 정부가 탈북자를 북한 주민으로 규정한다면 중국에 탈북자 석방을 요구할 명분도 약해지는 것 아니냐”고 안타까워했다. A 양은 최근 중국에서 체포돼 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자 31명 중 한 명이다.
A 양 사례는 최근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려다 체포된 탈북자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현실적 문제 중 하나다. 탈북자 구출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은 체포된 탈북자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한국 국민으로 인정하는 서류만 발급해 주면 매년 북송되는 수천 명의 탈북자 가운데 상당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에 도착한 탈북자들은 3국으로 탈출하려고 이동하다 일선 공안원들에게 붙잡혀 중국 하급 파출소에서 심문을 받는 일이 많다. 보통 이 경우 현지에서 탈북자 지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물밑에서 공안과 석방 교섭을 벌이는데 이때 가장 많이 요구받는 것이 한국인임을 증명하는 서류다. 풀어줄 명분을 달라는 것이다. 공안 소식통은 “중국 정부 역시 탈북자 문제를 골치 아프게 여기고 있어 중앙의 개입 없이 지역에서 조용히 처리하길 바란다”며 “대다수 공안은 탈북자를 악착스럽게 잡아 북송시키는 데 별로 관심이 없지만 보낼 곳이 없으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탈북 지원 활동가는 “탈북자도 넓은 의미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탈북자 전체에 대해 그렇게 해주는 게 어렵다면 남쪽에 가족이 있는 탈북자만이라도 한국인이라고 입증하는 서류를 발급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에 먼저 탈북한 가족이 있는 탈북자는 북송되면 더 큰 처벌을 받는다.
▶ [채널A 영상]“북송될 바에야 독약 보내서…” 탈북자 가족의 절규
▼ 中공안들 “명분이 있어야 풀어주지…” ▼
현재 정부는 제3국까지 도착한 탈북자에 대해선 한국인으로 인정해 주민등록이 없더라도 여권을 발급해 주고 있다. 이런 방침을 중국으로 확대하면 탈북자 가족들이 체포된 가족의 신상정보를 정부에 제공하며 보호를 요청해 오는 경우 한국인임을 인정하는 서류를 발급해 줄 수 있다는 게 많은 현지 활동가들의 주장이다. 물론 중국 당국이 앞으로 한국인 입증서류를 인정해 주지 말라고 전국 일선 공안에 지시를 하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이 경우 여권을 분실한 진짜 한국 국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또 다른 외교적 문제가 발생한다.
판사 출신의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탈북자의 법적 지위는 본인이 북한 지역을 벗어나서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의사를 표시하는 때부터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취급해야 한다. 그래서 국내에 들어오면 귀화하거나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등록만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우리 헌법재판소 결정 및 대법원 판례며 헌법정신이다”라고 지적했다. 2000년 헌재 판결(97헌가12)과 1996년 대법원 판결(96누1221)에는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명시돼 있다.
2008년 2월에 제정된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은 ‘북한이탈주민’을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자’로 한정한 뒤 ‘대한민국은 보호대상자에 대하여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특별한 보호를 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북한이탈주민의 보호신청을 받은 재외공관장은 지체 없이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에게 통보하여야 하며 국가정보원장은 필요한 조치를 취한 후 결과를 통일부 장관에게 통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껏 중국에서 체포된 탈북자들에 대한 처우는 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론에 보도돼야 외교부가 중국에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고작이다.
국제적으로도 이별한 가족, 특히 미성년 자녀는 부모와 함께 살도록 해주는 것이 보편적인 인도주의적 법률관례다. 미국 등 서방국들에는 ‘가족초청제도’가 있으며 한국도 중국동포가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 중국에 있는 미성년자를 초청해 함께 살 수 있도록 법으로 지정하고 있다. A 양처럼 부모가 한국에 거주하는 미성년자를 고문과 종신수용이 기다리는 북한으로 송환해 영영 생이별하게 만드는 것은 국제관례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