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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스웨덴식 사랑

입력 | 2012-02-23 20:00:00


영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스웨덴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의 밀리언셀러를 원작으로 했다. 용의 문신을 하고 요란하게 피어싱한 여주인공 리스베트는 천재 해커지만 인간관계에선 둔재다. 어려서부터 “내 힘으로 살았다”고 믿지만 실은 정부의 도움, 즉 복지제도로 살았다. 리스베트를 연기하면서 루니 마라는 스웨덴 동화 ‘말괄량이 삐삐’를 떠올렸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도 1990년대 방송된 독거(獨居)소녀 삐삐는 집 안에 금화를 쌓아두고, 황소를 번쩍번쩍 들면서 못된 어른들을 혼내주는 강한 소녀였다.

▷“삐삐 같은 어린아이도 독립적으로 혼자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챙겨주는 문화가 노르딕 웨이”라고 스웨덴 역사학자 라르스 트레고르드는 지난해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했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같은 북유럽에서 사회의 기본단위는 개인이다. 노르딕 웨이란 개인을 가족의 법적 도덕적 의무에서 해방시켜 줌으로써 생산적 인력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책 목표다. 여성을 엄마의 구속에서 풀어주는 무상보육, 부모를 경제능력과 상관없이 교육비 부담에서 풀어주는 학자금 대출정책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결혼이라는 울타리가 불안해지고, 부모는 자녀들의 부양을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건 나중 문제다.

▷트레고르드는 “진정한 사랑이나 우정은 독립적이고도 동등한 개인 사이에서만 가능하다는 게 스웨덴식 사랑 이론”이라고 했다. 제목도 민망한 책 ‘스웨덴인은 사람인가?’에서다. 그 덕에 양성평등이 발달하다 보니 타고난 마초들 사이에선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 늘고 있다. 작년 여름 노르웨이에서 청소년 80여 명에게 총을 쏜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도 이혼한 어머니를 비롯한 페미니스트를 증오했다.

▷1960년대만 해도 삐삐는 복지천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지금도 북유럽 국가들은 글로벌 경쟁력, 생산성, 삶의 질 등 16개 지표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밀레니엄’의 리스베트는 남들과 지내는 방법을 모르는 극단적 개인주의자로 등장한다. 스웨덴 정부는 리스베트의 정신병을 치료한다며 1년간 나체로 침대에 묶어뒀을 만큼 강한 정부였다. 지나친 운동은 건강을 해치듯이 독립성도 지나치면 파편화한 사회를 만든다. 부족한 사랑도 문제지만 지나친 사랑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