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과 제자 황상의 인연 담은 편지 등 발견
‘치원진장’에 실린 정학연의 편지(왼쪽). 다산의 성묘를 위해 상경했다가 전남 강진으로 돌아간 황상에게 잘 귀가했는지 등 안부를 묻고 있다. 정약용 가문과 황상 가문의 우의를 약속한 정황계의 계권 원본(오른쪽). 황상의 이름과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의 이름이 뚜렷이 적혀 있다(붉은 원 안). 정민 교수 제공
다산 정약용
이 자료는 황상의 사촌이자 함께 다산에게 배웠던 황지초(黃之楚)의 5대손 황수홍(73) 씨가 보관해온 것으로 최근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에게 연락해 그 존재를 알렸다. 정 교수는 지난해 12월 다산과 황상의 인연을 다룬 책 ‘삶을 바꾼 만남’(문학동네)을 펴낸 바 있다.
1802년 다산은 유배지인 전남 강진의 주막집에 서당을 차린 후 지방 아전의 아들인 15세 소년 황상을 만나 제자로 삼았다. 이후 황상은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다산의 ‘삼근계(三勤戒)’를 가슴에 새기며 평생 공부에 전념했다. 정학연과도 1805년 강진에서 처음 만난 후 학문과 마음을 나누는 벗으로 지냈다.
‘치원소고’에는 황상이 정학연에게 보낸 편지 ‘상유산선생서(上酉山先生書)’가 실려 있다. 여기엔 다산의 서당이 있던 주막집 앞에서 황상이 아이들과 공차기를 하다 다산을 처음 만난 과정과 두 사람이 사제로서 맺어온 인연이 생생히 나타난다. “마치 (다산의 가르침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것 같으니, 어찌 (제 마음이)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 같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장가 들 때는 ‘네 예장(禮狀)은 나 아니면 누가 쓰겠니’ 하시고는 써주셨지요. 또 선생님은 ‘내가 능히 하늘 해를 보지 못한 채로 이 땅에서 늙어 죽게 된다면, 두 아들이 모두 천리 밖에 있으니 염습하는 절차는 너밖에 행할 사람이 없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다산이 칭찬한 황상의 글 ‘길기론(吉氣論)’과 정학연이 칭찬한 황상의 기행문 ‘유송악산기(遊松岳山記)’ 전문도 ‘치원소고’를 통해 처음 전모를 드러냈다. 또 다산의 또 다른 제자로 알려진 김세준(金世俊)의 전기도 실렸다.
초서집 ‘치원총서’ 두 책은 황상이 ‘장자(莊子)’와 ‘이아주(爾雅注)’를 베껴 쓴 것이다. 황상은 다산의 말에 따라 평생 책을 베껴 적는 초서 작업을 했다. 쌓아둔 초서집의 높이가 자신의 키를 넘길 정도였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실물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
정 교수는 “새롭게 발굴된 자료를 통해 다산과 황상 두 사람 및 두 집안의 인연은 물론이고 다산학단(茶山學團)의 모습과 황상 문학의 진면목도 새롭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