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해를 품은 달’ 》
시청률 40%를 돌파한 드라마는 오랜만이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은 시청률 말고도 한국 드라마 역사에 나름 기록될 만한 업적을 남겼다. 가장 가슴 아프고 가장 아름다운 아역 출연 장면들이 그것이다. 아역이 출연한 첫 6회 분량 안에 제작진은 전편(全篇)을 만들 역량을 쏟아 붓는 듯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도, 가장 비극적인 순간도 모두 1∼6회에 등장했다. 하늘에서 벚꽃을 날리며 사랑을 고백하고 오해에 가슴 아파하고 “나의 빈이다!” 같은 결정적 대사를 던지는 몫까지, 모두 아역 차지였다.
드라마가 아역에 신경 쓰는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한국 드라마, 특히 사극에서 그랬다. ‘대장금’ 이후 아역들은 재롱잔치의 인기스타에서 극의 성공을 끌어내는 중요 포인트로까지 위상이 높아졌다.
그리고 연우 역을 맡은 한가인이 괜히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연기자라 하더라도 가장 극적인 순간이 이미 지나가버린 삶을 뒤늦게 뒤집어쓰고, 처음부터 그런 삶을 산 것처럼 연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뭔가 의학적 시술이 가미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그 동그란 표정만은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발 빠른 분들은 이미 김유정(연우 아역), 여진구(훤 아역)의 팬을 자처하며 기꺼이 이모·삼촌 팬을 넘어 엄마·아빠 팬이 되기에 이르렀다. 지금 화제의 중심은 국왕 훤 역할의 김수현이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여진구나 김유정에게서 ‘넥스트 빅 싱(next big thing)’의 낌새를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아마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주목을 받은 아역들이 성인 연기자로 안착하는 비율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얼마나 안정적인지를 보여줄 척도가 될 것이다.
다만 그 나이의 남자아이라면 해보지 않았을 고백을 훌륭하게 던지는 여진구를 보면서 마냥 꺄악! 거리기엔 양면적인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의 첫사랑과, 그들이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으로 평생을 산다는 이야기에 공명한다는 사실이 좀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젠 자신의 나이 또래가 연기하는 판타지보다도 더 멀리 떨어진 어린 아이들이 펼치는 판타지에 위로받으며, 또 자신한테는 없었던 아역들의 반짝이는 재능을 관람하며 박수를 보내는 나 같은 어른들. 국가적으로 유독 어려웠던 지난해 일본에서 가장 급부상한 스타가 드라마 ‘마루모의 규칙’에 나와 천재 아역으로 불린 아시다 마나(8세), 스즈키 후쿠(8세) 콤비였다는 점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복잡한 심정을 쉽게 정리하자면…, 좋은데, 참 좋긴 좋은데, 이 나이에 밤마다 베개 끌어안고 대사를 달달 외울 정도로 다시보기에 몰입하는 난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말이지.
수세미 동아일보 기자. 이런 자기소개는 왠지 민망해서 두드러기 돋는 1인. 취향의 정글 속에서 원초적 즐거움에 기준을 둔 동물적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