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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人]EBS 낭독 프로그램 맡은 배우 강성연 씨 “동화 낭독하다 울먹… 가슴 벅차올라 울컥”

입력 | 2012-02-25 03:00:00


강성연 씨는 “동화의 매력은 짧은 이야기 속에 내 사연을 싣는 데 있다”고 말했다. 결혼한 지 한 달여밖에 안 된 그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는 친정엄마가 생각나 많이 울었다고 한다. EBS 제공

“언제나 알을 품고 싶었지, 꼭 한 번만이라도. 나만의 알, 내가 속삭이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아기. 절대로 널 혼자 두지 않아. 아가야, 알을 깨렴. 너를 보고 싶어. 무서워하지 마라.”

23일 오후 2시경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있는 EBS방송센터 라디오 부스에선 배우 강성연 씨(36)의 동화 낭독이 이어졌다.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중 한 대목을 읽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잠시 흔들렸고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EBS FM은 ‘책 읽는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27일부터 평일 오전 10시∼오후 9시 다양한 책 낭독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강 씨는 동화와 시를 낭독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오전 10∼11시)와 ‘시 콘서트’(오전 11시∼낮 12시)의 진행을 맡았다. 이날은 시범방송을 위해 처음 녹음을 하는 날이었다.

“지금도 동화를 즐겨 읽어요. 특히 그림 보는 걸 좋아해요. 잔상이 오래가거든요. 오늘 낭독하다가 제 감정에 폭 빠져 여러 번 울먹였어요. 이 프로그램은 매주 그림책과 동화책 10권 정도를 읽어오라고 ‘숙제’를 내주는데, 이렇게 기쁜 숙제는 처음이에요.”

강 씨가 꼽은 ‘내 인생의 책’ 역시 동화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였다. 어릴 적 처음 읽을 땐 어린 왕자가 사라진 게 너무 슬퍼 펑펑 울었단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책이 전하는 메시지와 느낌이 계속 달라졌다고 한다. “최근 다시 읽었을 땐 만남과 이별, 그로 인한 슬픔과 분노, 외로움 등이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만큼 초연해졌다고나 할까. 그게 더 슬프더군요.”

1996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강 씨는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드라마 ‘내 사랑 내 곁에’ ‘사랑밖에 난 몰라’ ‘덕이’, 영화 ‘왕의 남자’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어릴 적 꿈은 연기자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성악을 공부하며 음악인을 꿈꿨지만 원하는 대학, 원하는 과에 입학하지 못했다. 당시 집안이 기울면서 비싼 레슨비가 드는 재수를 할 수도 없었다. 딸이 연기자가 되길 원했던 어머니의 바람대로 강 씨는 서울예대 방송연예과(현 방송영상과)에 입학했다.

“곧바로 공채 탤런트가 됐고 큰 작품의 주인공까지 맡았죠. 그렇게 몇 년 동안 제 의지가 아닌 채로 등 떠밀려가듯 살았어요. 스물아홉 살 땐가. 이상한 겉옷을 입고 내면에 찌꺼기만 가득 채운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를 볼 수 있었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언니가 이 두 권의 책을 권했죠.”

미국 정신의학자이자 호스피스 운동의 창시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함께 지은 ‘인생 수업’(이레)과 ‘상실 수업’(〃)이었다. ‘인생 수업’이 죽음을 앞둔 이들을 인터뷰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강조한 반면 ‘상실 수업’은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남겨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강 씨는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그가 살기 싫다고 외친 하루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실히 원했던 하루였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한다. 지금도 삶이 힘들 때면 언제나 꺼내 보는 지침서다.

그는 1월 재즈피아니스트 김가온 씨(36)와 결혼했다. 신혼 재미에 푹 빠져 있다는 그는 “듬직한 내 편이 생겨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올 상반기에 그가 노래를 부르고 남편 김 씨가 피아노를 치는 재즈콘서트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강 씨는 두 장의 음반을 낸 가수이기도 하다. 올해에 남편과 함께 재즈 음반도 낼 계획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모든 여유로움은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제가 ‘인생 수업’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세상엔 감사할 일이 넘치지요. 그런데 동화를 큰 소리 내 읽다 보니 예쁜 아기를 낳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생겼어요. 또 다른 감사할 일도 생기면 좋겠네요. 호호.”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