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美백악관 차관보 지낸 강영우 박사 별세
장애를 딛고 인간승리를 이룬 삶을 차분하게 정리한 뒤 세상을 떠난 고 강영우 박사의 생전 모습. 동아일보DB
지난해 11월 말 췌장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온 강 박사는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슬퍼하지 말아 달라.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받아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 주변 지인들에게 암진단 사실을 알리면서 작별과 위로의 말을 건네 감동을 자아냈다. 올 1월에는 자신이 40년 전 장학금을 받았던 국제로터리재단에 평화장학금으로 25만 달러를 기부해 생의 마지막까지 봉사하는 삶을 보여줬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밤늦게 스프링필드 아파트로 찾아간 기자에게 강 박사의 부인 석은옥 여사(70)는 “가족들이 조용히 고인을 기릴 시간이 필요하다”며 정중히 인터뷰를 사양했다. 그는 “남편이 이렇게 많은 분에게 사랑받았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1944년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태어난 강 박사는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듬해 축구공에 눈을 맞아 시력을 잃었으며 같은 해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났다. 3년 후 누나까지 잃으면서 10대에 세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고된 청소년기를 보냈다.
췌장암 판정을 받은 후 강 박사는 임종을 준비하며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를 아버지로 만들어준 너희들, 손주들과 오붓한 낮잠을 즐길 기회를 준 두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한다”며 지난날을 회고했다. 첫째 아들 폴(한국명 진석·39) 씨는 워싱턴포스트가 ‘슈퍼닥터’로 선정한 유명 안과 전문의이며 둘째 크리스토퍼(진영·35) 씨는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 박사 별세 후 가족들이 공개한 편지에는 부인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담겨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에게’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당신은 나의 지팡이가 돼서 나보다 항상 한 발짝씩 앞서 걸어줬다”며 “함께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에 감사함과 미안함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고 전했다.
강 박사는 암 진단 후 동아일보와의 두 차례 전화인터뷰에서 “죽기 전에 다시 한번 한국에 가서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장례식은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주의 한인 중앙장로교회에서 다음 달 4일 추도예배로 치러진다. 강 박사 유족은 “조의금은 받지 않는다”며 “그 대신 국제로터리재단의 평화장학금 앞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한편 25일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도 강 박사의 분향소가 마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