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대 학연은 가라, 인터넷-SNS 창업동지가 뜬다
지난해 1년 동안 전국 대학생은 안철수, 박경철 두 명사가 진행하는 순회강연 ‘청춘콘서트’에 푹 빠졌다. 참여 신청도 쉬웠고 입장 순서도 실시간으로 정해졌다. 바로 ‘온오프믹스’라는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 덕분이었다.
오프라인 행사의 참가 신청을 인터넷으로 받는 이 서비스는 고졸 학력인 양준철 대표(27)가 운영한다. 양 대표는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몰락한 아픈 기억이 있었지만 사업의 매력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는 고교 재학 도중 소프트웨어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2000만 원의 빚까지 졌다. 하지만 그대로 끝나지는 않았다. 인터넷이 그에게 재기의 기회를 줬다.
○ 네트워크 창업가들
양 대표는 류 소장의 제안을 받자마자 그 친구들을 서울 마포의 한 고깃집으로 불러 모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인터넷으로 만나 창업 동호회 활동을 이어왔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은 “한 번 맡아보자”며 양 대표와 의기투합했다. 고졸 청년의 인맥은 일류대 인맥 부럽지 않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과 SNS가 학연을 대신해 창업가의 우군(友軍)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인터넷 동호회나 페이스북, 트위터로 엮인 ‘네트워크 동료들’이다. 양 대표의 모임은 고교 3학년 시절이던 2002년 만든 ‘한국청소년비즈니스연합회’. 양 대표는 “온라인에서는 고졸과 지방대 출신도 실력만으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이는 1990년대 후반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 IT 벤처는 주로 서울대나 KAIST 같은 대학의 동아리나 기숙사 친구들이 끼리끼리 창업했다. NHN, 넥슨, 엔씨소프트, 네오위즈 등이 대표적이다. NHN의 창업자 이해진 씨와 넥슨의 창업자 김정주 씨는 KAIST에서 기숙사를 함께 썼고, 창업 이후 서로의 회사 지분을 매입해 경영권 방어도 도왔다.
1995년 2월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창업한 이재웅, 이택경 씨도 연세대 선후배다. 이택경 씨는 “당시에는 실력을 갖춘 개발자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안정적인 대기업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며 “친한 대학 선후배끼리 창업을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 실리콘밸리는 장소가 아니라 개념
창업 교육과 다양한 경험도 인터넷과 SNS를 통해 얻는다. 국내에서 늘고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창업 모임이나 투자 모임 덕분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시작된 ‘고벤처 포럼’. 이 모임에서는 창업을 꿈꾸는 벤처기업가와 투자자, 엔지니어를 두루 만나 교류할 수 있다. 모임이 끝난 뒤에는 SNS에 후기가 올라온다. 그러면 다음 포럼의 참석자가 크게 늘어난다. 처음에 10명 남짓이던 참석 인원이 최근 300여 명까지 늘었다.
이런 식의 투자 유치는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일어나는 형태다. 한국과 실리콘밸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개념은 한국에도 존재하는 셈이다. 지난해 시작된 ‘V포럼’부터 대학을 돌며 벤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스타트업 위크엔드’ 같은 행사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고벤처 포럼을 만든 고영하 회장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실리콘밸리의 모임을 통해 인재를 영입하고 투자를 받으며 성장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모임을 통해 청년들이 학연이나 정보에 얽매이지 않고 성공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