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국제부 기자 탈북기자·김일성대 졸업
이달 14일 나는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한국으로 오다 체포된 탈북자 31명을 석방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매일같이 관련 기사를 발굴해 끊임없이 탈북자 구명운동의 불길이 번져 나가도록 노력했다. 지금은 이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커졌다. 그 덕분에 주위에선 쉽지 않은 일을 했다고 박수도 쳐주지만 고백하건대 정작 나는 너무 아프다.
▶본보 14일자 1면 탈북 주성하 기자 ‘호소의 편지’
그런데 갑자기 ‘사고’를 친 이유는 무엇일까. 8일 선양(瀋陽)에서 한국행 탈북자 12명이 체포된 지 불과 몇 시간 뒤 나는 그들의 명단을 전달받았다. 10년 넘게 탈북자 문제를 다뤄온 경험은 이들이 결국 북송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물밑 석방 교섭이 끝내 결렬됐다고 현지 활동가들이 알려오기까지 엿새간 나는 끊임없이 자문자답했다. 묻어버릴까 터뜨려버릴까….
터뜨린다는 것의 의미를 나는 잘 안다. 중국의 탈북자 검거 선풍을 불러와 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탈북자들이 체포돼 북송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도 더욱 강경해질 것이다. 수십 명이 될지, 어쩌면 수백 명이 될지도 모를 목숨들이 내 선택에 달린 것이다.
▶ [채널A 영상]“북송될 바에야 죽음을…” 탈북자 가족의 절규
하지만 끝내 나는 터뜨리는 길을 택했다. 김정은 체제 이후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탈북자 처벌과 삼엄한 국경 경비, 더는 좋을 수 없는 북-중 밀월 등으로 탈북의 흐름은 이미 꽁꽁 얼어붙었다고 판단했다. 현재의 탈북 환경과 탈북자 처벌이 사상 최악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이번 일을 묻어버려 얻을 실리보다 국제사회가 주목해 얻을 실리가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북송된 뒤로 나는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살았다. 얼어붙은 감방 속에서 추위와 공포에 떨 혈육을 생각하면 밤에 이불을 덮는 것조차 죄스럽다. 새우잠으로 밤을 보내고 아침이면 출근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음을 지어야 하는 그 아픈 삶을 저들 또한 살아야 하다니. 결국 혹시 구명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여론에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론이 커질수록 강화될 단속 때문에 피해를 볼 이름 모를 탈북자들에겐 나는 죄인이다.
이번 선택이 잘한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 평가는 당장 내릴 수도, 남이 내려줄 수도 없다. 먼 훗날 오직 양심만이 심판할 것이다. 부디 희생보다 더 많이 구할 수 있기를….
주성하 국제부 기자 탈북기자·김일성대 졸업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