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게 감싸주고, 남의 고통 이해시켜야
부모는 학교폭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곽영숙 이사장(제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과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김붕년 학술이사(학교폭력TFT위원,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나 2회에 걸쳐 싣는다. 1회에서는 학교폭력에 대한 부모들의 오해, 2회에선 학교와 정부의 역할을 살펴본다.
▽이진한 기자=청소년기 중 학교폭력은 언제 가장 심각한가요?
곽영숙 교수 제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아이가 가해자에게 맞고 돈을 빼앗기면서 고통을 당하는데 왜 선생님과 부모에게 말하지 않나요?
▽김=피해 아이 상당수가 ‘학습된 무력감’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누구에게 말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라고 미리 생각하는 것이죠.
▽이=왜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김=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들고 그룹으로 따돌리는 상황에 노출돼 있어요. 따돌림당하는 아이들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방관자’적 태도에도 익숙해져 있죠. 이러다 중학교에 가서 자신이 따돌림과 학교폭력을 당할 경우 희생자가 돼도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죠. 그래서 학습된 무력감이라는 것입니다.
▽김=부모와 자녀 간의 애착이나 친밀감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기 쉬워집니다. 아이에게 정말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신뢰를 얻는 부모가 돼야 합니다. 아이의 말을 존중해 주고 아이가 말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하죠. 결국 아이는 부모와의 애착에 문제가 없고 스스로가 존중받는 ‘자아 존중감’이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자아 존중감은 부모로부터 모욕감이나 무시나 어떤 간접적인 폭력이 없을 때만 가능합니다.
▽이=참 쉽지가 않습니다. 맞벌이 부부,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에 맡겨야 되는 상황에서는 말이죠.
▽곽=한 살 이전부터 부모와의 애착이 중요하므로 사실 인성교육은 영유아기 때부터 시작됩니다. 요즘은 돌만 돼도 어린이집에 보내는데, 사실은 부모가 적어도 3년은 아이를 직접 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돼야 합니다. 반사회적인 행동 문제는 애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생깁니다. 또 충동 조절은 걸음마 때부터 배워야 합니다. 미운 세 살이라는 말도 있듯이 아이가 물건을 던지거나 애들을 때리거나 할 때 ‘오냐 오냐’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훈육을 통해 충동 조절을 익히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 어린이집 유치원 등 집단 활동을 통해 점점 더 자기 조절을 배웁니다.
▽김=약자에 대한 배려도 적어도 유치원 때부터는 가르쳐야 합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도 결국 한배 탄 사람이라는 인식과 어떻게 함께 갈 것인가와 같은 공동체의식은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생겨납니다.
김붕년 교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곽=경쟁에서 무조건 일등을 해야 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그런 사회에선 공감을 가지는 아이 교육이 힘들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것에 반대하는 정신운동이 일어나야 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학교폭력 사태가 이슈화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만약 말을 안 하는 아이가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 알 수 있는 방법은요?
▽김=부모가 세심하게 아이를 살펴보면 알 수 있어요. 우선 굉장히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을 겁니다. 자신감 없어 하고 학교생활에서 친구가 갑자기 줄거나 사라지는 또래 관계의 변화가 생기고, 친구에게서 오는 전화를 피합니다. 심리적으로 짜증이나 분노가 잘 생기고, 하소연할 데가 없으니 특히 부모에게 짜증이나 분노를 표출합니다.
▽곽=학교폭력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대표적인 증세가 자꾸 생각나는 것인데요. 그래서 악몽을 자주 꿉니다. 긴장이나 불안 반응이 신체증상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가령 머리 아프다, 배 아프다, 소화가 안 된다는 등의 호소를 하거나 회피 반응으로 학교에 안 가려 하기도 합니다. 심할 경우 자살 징후 등을 보입니다. 바로 부모 교사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죠.
▽이=학교폭력 문제는 어릴 때 부모의 교육이 시작점이었군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부모와 담임과 학생들이 모두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음엔 학교와 정부가 대처해야 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진한 의사·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