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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법관 ‘두 개의 칼’

입력 | 2012-02-28 20:21:00


“옛날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였던 시라쿠사의 왕 디오니시우스의 신하 중에 다모클레스라는 사람이 있었네. 그는 왕이 권력을 누리는 것을 몹시 부러워했는데 그것을 안 왕은 그에게 왕좌를 하루 빌려주었지. 감격한 다모클레스는 왕좌에 앉았네. 눈앞에 산해진미가 가득 쌓여 있었는데 문득 머리 위를 보니 날카로운 칼이 한 가닥 머리카락에 묶인 채 늘어져 있지 않겠나. 물론 다모클레스는 새파랗게 질려버렸는데 권력의 자리가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운가를 나타내는 이야기일세.”(정찬의 소설 ‘다모클레스의 칼’ 중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그제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법관에게 칼이 있다면 다모클레스의 칼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칼이 조금만 잘못되면 법관 머리 위로 떨어질 수 있으니 고도의 소명의식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법관의 임무를 수행하라는 주문이다. 국가요인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시대의 정곡을 찌르는 비유를 고전에서 적절하게 끄집어내 인용하면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본래 법관에게는 다모클레스의 칼이 아니라 디케 혹은 유스티티아의 칼이 있다. 그리스어 디케(dike)와 라틴어 유스티티아(justitia)는 모두 영어의 정의(justice)를 말한다. 정의의 여신상은 보통 안대로 눈을 가리고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이리저리 둘러보지 말고 저울처럼 공정하게 판결하고 칼처럼 단호하게 집행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서울 서초동 대법원 건물 로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특이하게도 안대로 눈을 가리지도 않았고 오른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으나 왼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눈가리개를 벗고 열심히 법전을 보는 것까지는 좋은데 법전 외에 페이스북 트위터 팟캐스트 등을 보느라 바쁜 법관들도 있는 것 같다. ▷양 대법원장은 다모클레스의 칼을 언급하면서 법관의 중립성을 무시하고 개인의 정치적 소신을 거리낌 없이 피력하는 판사, 시정잡배나 사용할 만한 저속한 언어로 법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판사들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듯하다. 출호이자반호이자(出乎爾者反乎爾者)라는 말이 있다. 증자(曾子)의 말이다.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법관들이여, 두 개의 칼이 가까이 있다. 신분보장만 믿고 디케의 칼을 잘못 쓰다가는 다모클레스의 칼을 맞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