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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승호]이용득의 정치 변신

입력 | 2012-02-29 20:14:00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에서 노동당은 노동조합을 모태로 탄생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노동당이 일반인 당원을 다수 충원해 계급정당에서 대중정당으로 변신하면서 스스로 노조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일부 사회주의권을 제외한 대다수의 나라에서 양자의 긴밀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조직이 겹치는 일은 없다. 영국 독일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1906년부터 법으로 노조와 정당의 분리 독립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7년까지 노조의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약하고 노동자를 억압하기 위한 독소조항의 개정을 거듭 요구했다. 당시 노조는 조합원으로부터 정치자금 징수, 노조기금의 정치자금 기부, 공직선거 시 특정 정당 및 특정인 지지 같은 활동을 할 수 없었다.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이 조항은 삭제된 대신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 노조 자격 박탈의 사유로 ‘주로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라는 조항이 신설됐다.

▷한국노총 창립 66년 만에 처음으로 정기 대의원대회가 무산됐다. 대의원들이 노총 지도부들의 과도한 정치 참여에 반발해 지난달 28일 대회 참석을 거부했다. 작년 12월 한국노총은 민주당, 시민통합당과 함께 통합(합당)을 공식 결의해 민주통합당으로 출범했다. 지지 또는 정책연대의 방식이 아니라 통합을 선언하고 통합정당의 지분을 받아들여 주요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당직을 겸직한 것이다. 이용득 노총 위원장은 당 최고위원을 겸했다. 노총 산하 27개 연맹 중 10개 안팎의 연맹 대의원들이 당직 겸임 철회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의원 대회 참석을 거부한 것이다.

▷한국노총은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과 제휴해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으로 간부 출신 4명이 정계에 진출했다. 정책연대를 주도했던 이 위원장은 공천에서 탈락했다. 이 위원장이 새누리당을 버리고 민주당과 손잡은 데는 배신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면 ‘철새 정치인’ 흉내를 낸 꼴이다. 노총과 정당의 통합에는 불법 소지도 다분하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노총이 정도(正道)를 벗어났다”고 공개 경고했다. 한국노총이 정치에 참여하더라도 노동운동이 본업이고 정치는 보조적인 것이 돼야 한다. 지금은 주객이 전도된 인상을 준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