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동일본 대지진 1년을 돌아보는 연속 보도,
오늘은 그 세번째 시간입니다.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대지진과
그에 따른 초대형 지진 해일은
무려 500km에 이르는 바닷가 마을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졸지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오늘도 악몽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채널A 영상]“살아있는 것만도 다행” 아물지 않은 동일본 상처
[리포트]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 아라하마
1년 전 해안 마을을 덮친 거대한 쓰나미는
내륙 2km까지 휩쓸어버렸습니다.
주유소도 당시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뿌리채 뽑혀나가면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습니다.
[녹취: 사토오 시게코 / 주민] (7초)
"바다까지 소나무 숲을 한참 지나가야 했는데
그 소나무 숲이 없다는 게 믿을 수 없어요"
고즈넉했던 바닷가의 주택밀집지역은 쑥대밭이 돼버렸습니다.
[스탠드업]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들었을 당시 이곳은
주택으로 가득찬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 집터만 남아있을 뿐
주택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목조주택이란 목조주택은
모조리 쓰나미에 쓸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인근의 한 초등학교
대부분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시간이었습니다.
일부 남아있던 아이들은 옥상으로 대피해 살아남았지만
집으로 돌아갔던 아이들은 대부분
순식간에 밀려온 쓰나미에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사토 사카이 (76세) 지역 주민]
"집에 돌아갔을 시간에 쓰나미가 온 거죠.
그 때 학교에 있던 아이들은 살았죠"
뛰노는 아이들로 가득해야 할 학교 운동장은
고철덩어리가 된 오토바이 수집장이 돼버렸습니다.
쓰나미로 주인을 잃은 채 찌그러져버린 것들입니다.
바닷가에는 마을 주민들이 세워놓은
위령비가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인터뷰:미나미모토 케이지 / 와카바야시 마을연합회장]
"생존자들이 살아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관광객으로 붐볐던 해수욕장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혀가고
대지진 1년이 다가오면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러 오는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하나 둘씩 발길을 옮길 뿐입니다.
[인터뷰: 요네자와 미요코 / 주민]
"불쌍하지요.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안타깝지요"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 오가쯔
부서지고 무너지고,
흉가처럼 변해버린 2층 연립주택 (달리)
창문은 물론 현관문, 내부 구조물도 거의 남아난 게 없습니다.
LP가스통이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고
갖가지 살림살이도 널부러져 있습니다.
바다 위에 떠있어야 할 보트는
주택가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스탠드업]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각종 행사를 했던 공민관 건물입니다. 그런데 그 옥상위에 버스 한 대가 걸터앉아 있습니다.
당시 쓰나미를 타고 둥둥 떠밀려왔던 버스가 그대로 옥상에 걸터앉고 만 것입니다.
생후 50일된 손자와 딸을 잃은 노부부는
공민관 위에 올라앉은 버스만 쳐다보면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나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인터뷰: 스기야마 마키요/ 주민]
"달아나려는 차량들로 길이 꽉 막혀
(딸이) 손자를 안고 피하려 했지만 쓰나미가 더 빨랐던 거죠"
포크레인이 분주히 움직이며
아직도 쓰레기 처리작업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스탠드업]
쓰나미 피해현장마나 쓰레기와의 전쟁이 한창입니다.
이처럼 곳곳에 쓰레기와 건축폐기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치우고 또 치워도 끝이 없을 정돕니다.
쓰레기 처리에만 20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미야기현내 시설만으론 불가능해
다른 현에 처리를 요청했지만 번번히 거부 당했습니다.
옮기는 과정에서 방사성물질 확산이 우려된다는 게 이윱니다.
[인터뷰: 다케다 신이치 /화북신보사 보도부장]
"국가가 정한 기준치를 밑도는 경우까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부반응은 매우 유감스런 일입니다"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이재민들은
정부가 제공한 가설주택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9제곱미터 남짓한 비좁은 공간이지만
피난민들로 바글바글했던 임시 피난소에 비하면
지낼만 하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사와무라 히로미쯔 / 주민]
"피난소에 비하면 꽤 낫죠"
방 한두 칸짜리 가설주택이다보니
살아남은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인터뷰:다카하시 노부코 / 주민]
"목숨만이라도 살아 있어 다행이죠"
앞으로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 복구작업.
집과 건물,
마을의 복구는 언젠가 이뤄지겠지만
마음의 복구는 평생 불가능할 것 같다는
한 유가족의 고백이 취재진의 귓전을 맴돕니다.
미야기현 쓰나미 피해현장에서 채널A 뉴스 윤경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