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Narrative Report]나는 인디언 용병… 언제든 짐싸야 할 숙명… 그래도 오늘 코트에 선다

입력 | 2012-03-01 03:00:00

캐나다 배구 국가대표… 7년간 8개국 떠돌이… 현대캐피탈 수니아스 선수




수니아스는 지난해 12월 연인 레베카 페리가 한국을 떠난 후 최고급 노트북을 샀다. 좋은 컴퓨터를 써야 조금이라도 더 선명한 화질로 페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니아스는 최근 페리가 한 미국 잡지의 수영복 사진 콘테스트 후보에 오르자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페리를 추천해 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수니아스가 지난달 24일 경기 용인시 소재 팀 숙소에서 페이스북을 통해 페리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용인=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나, 해고됐어. 한국을 떠나야 해.”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사귄 지 채 열흘도 안 됐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이별을 해야 한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받아들여야만 했다. ‘용병(傭兵·외국인 선수)’의 운명이 이런 것이니까. 지난해 12월 나는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지난해 9월 처음 만나 연인이 된 GS칼텍스의 용병 레베카 페리(24·미국)가 팀에서 퇴출됐기 때문이다. 내 손목엔 페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시계만 덩그러니 남았다. 하지만 아직도 멀리서나마 소중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외국인 선수 달라스 수니아스(28·캐나다)다. 》
○ 두 달 만에 받은 해고통지서

나는 캐나다 국가대표다. 하지만 내 나라엔 프로배구 리그가 없다. 함께 배구를 했던 친구들은 하나씩 어디론가 떠났다. 선수생활을 이어가려면 다른 나라에 가야 했다. 나 역시 2006년 앨버타대를 휴학하고 폴란드로 갔다. 스물두 살에 숙명처럼 ‘용병’이 됐다.

초반에는 승승장구했다. 2008년 프랑스 리그를 거쳐 러시아 리그에 진출했다. 러시아는 세계 최강 이탈리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배구 강국. 용병생활 3년 만에 이룬 성취였다.

하지만 세계 일류 리그의 벽은 높았다. 아무리 강스파이크를 때려도 번번이 막혔다. 처음엔 나를 반기던 동료들의 반응도 갈수록 차가워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러시아어로 내게 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용병은 짧은 시간에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냉혹한 평가를 내린다. 나도 두 달 만에 해고됐다. 처음 겪는 좌절이었다. 결국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고 2009년 스페인 리그로 이적했다. 그렇게 떠돌이 생활은 계속됐다.

스페인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나의 소속팀 유니카자 알메리아는 스페인 국왕컵에서 우승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구단이 월급을 차일피일 미룬 것이다. 구단 관계자는 “다음 주엔 꼭 주겠다”고 했지만 수시로 말이 바뀌었다. 그 당시 스페인은 경제난에 허덕였다. 구단의 재정 사정도 좋지 않았다. 결국 나는 연봉의 일부를 포기한 채 2010년 5월 스페인을 떠났다.

나 같은 용병은 구단이 약속한 돈을 주지 않을 때 곤란을 겪는다. 구단을 상대로 고소를 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이미지가 나빠져 다른 팀에서 뛰기 힘들어진다. 변호사를 선임하려 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에이전트 역시 용병이 해당 구단과 문제를 일으키는 걸 원치 않는다. 에이전트가 관리하는 다른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용병들은 돈을 제때 확실히 지급하는 한국 배구리그를 선호한다.

○ 5년 만에 결심한 은퇴


스페인을 떠났지만 생업인 배구를 그만둘 순 없었다. 2010년 10월 터키 리그로 옮겼다. 다섯 번째 나라였다. 심신은 지쳐 있었다. ‘언제까지 이곳저곳 떠돌며 배구를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인생의 전부였던 배구에 대한 흥미가 없어졌다. 코트에 나서도 예전 같은 흥분이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터키에 간 지 한 달 만에 다시 짐을 싸 캐나다로 돌아왔다. 이듬해 여름 캐나다 배구대표팀 일정까지만 치른 뒤 배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나와 배구의 인연은 질겼다. 어느 날 에이전트에게 연락이 왔다. “아랍에미리트에서 한 달간 뛸 임시 용병을 구한다는데 생각 있어?” 그 당시 마땅한 직업이 없었기에 한 달쯤이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랍에미리트는 배구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부담도 적었다.

그렇게 아랍에미리트에서의 짧은 한 달을 마무리하고 캐나다로 돌아오는 길에 인도네시아에 들렀다. 인도네시아 리그에서 뛰던 고향 친구가 “두 경기만 뛰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난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 팀에 5일간 합류했다. 배구를 버릴 순 없었다.

○ 최초의 ‘인디언’ 국가대표

내 몸엔 캐나다 인구의 3.8%에 불과한 인디언의 피가 흐른다. 피부도 백인처럼은 희지 않고 머리도 검다. 아버지 로드니는 ‘크리’, 어머니 비버리는 ‘오집웨이’라는 인디언 부족 출신이다.

나는 캐나다 배구 사상 첫 인디언 출신 국가대표다. 배구를 하는 인디언 후배들은 국가대표인 나를 닮고 싶어 했다.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 해외에 진출한 뒤에도 리그가 끝나면 곧장 캐나다로 와 대표팀에 합류했다. 배구 국제대회인 월드리그를 비롯해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 예선과 배구월드컵에 출전했다. 그렇게 1년의 절반은 용병으로, 나머지는 국가대표로 살았다. 몸은 힘들어도 캐나다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견뎠다.

그런데 지난해 대표팀에 합류한 뒤 스스로에게 크게 실망했다.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고 느껴졌다. 10년을 지켜온 대표팀인데 후배들에게 밀려나고 싶진 않았다. 캐나다 최초의 인디언 국가대표답게 성공을 거둔 뒤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배구공을 잡았다.

때마침 지난해 7월 현대캐피탈에서 용병을 구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에는 같은 대표팀 멤버인 가빈 슈미트(26·삼성화재)가 뛰고 있었다. 가빈과는 프랑스에서 함께 뛰면서 절친해진 사이다. 가빈은 한국에서 최고 스타가 돼 있었다. 내 가슴속에서 다시금 의욕이 불타오르는 걸 느꼈다. 나는 4명의 경쟁자를 꺾고 현대캐피탈의 입단 테스트에 합격했다. 새롭게 출발하는 마음으로 9월 한국에 왔다.

○ 짧은 만남 긴 이별


한국은 나에게 행운의 나라였다. 타향에서 서로 힘이 될 여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GS칼텍스의 페리와 나는 같은 에이전트를 통해 한국으로 온 인연으로 가까워졌다. 낯선 땅에서 힘겨워하는 페리를 보니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미 7개 국가에서 수많은 경험을 했기에 페리의 마음을 이해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했고 자연스럽게 연인이 됐다.

페리가 팀에서 퇴출된 뒤 내가 가장 먼저 구입한 건 새 노트북이었다. 페리는 한국에서 퇴출된 뒤 터키 리그로 갔다. 우리는 5000km 넘게 떨어져 있지만 영상통화나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있다.

페리는 3월부터 푸에르토리코 리그로 옮긴다. 나는 한국 리그가 끝나는 4월에 푸에르토리코로 날아갈 생각이다. 푸에르토리코에서 페리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5일 정도다. 곧바로 캐나다 대표팀에 합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 소박한 꿈


내 용병 인생 7년은 영광과 굴욕이 교차했다. 세계 일류 리그에 ‘스카우트’됐다가 배구 후진국에서 ‘땜방’ 선수로 뛰기도 했다. 가장 많이 받았던 연봉과 최저 연봉은 20배 넘게 차이가 난다.

나는 아직도 밤마다 잠을 청하기 전에 자신에게 말하곤 한다. “캐나다에 프로배구리그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내 침대에서 자고, 내 음식을 먹고, 내 언어로 말하면서 배구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캐나다에 프로리그가 생기지 않는 한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외국을 떠도는 건 내 숙명인 셈이다.

내가 다녔던 나라들은 제각기 다른 향기가 느껴진다. 난 힘들 때면 캐나다의 향기를 떠올릴 무언가를 찾는다. 와플에 캐나다 특산물인 메이플 시럽을 듬뿍 발라먹거나 캐나다 국가대표팀 티셔츠를 입곤 한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닮은 숙소 식당 아주머니가 해주는 스파게티를 맛보며 가족을 떠올린다.

나는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 운명이다. 잘하면 더 좋은 대우를 받는 리그로 옮기고, 못하면 짐을 싸야 한다. 언제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나라를 거칠지도 알 수 없다.

나는 용병이다. 지난 7년간 8개국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불러주는 팀이 있다면 앞으로도 배구를 계속하고 싶다. 내 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동영상=세리머니왕 수니아스 “계획한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