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교수
‘원칙없는 승리’ 노무현 정신 훼손
현역 의원을 교체해야 한다는 욕구도 강하다. 선거 막판에 유권자들이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유권자 재편성’의 기류는 분명 야당에 유리하게 보인다. 문제는 이런 민심의 우호적 기류가 민주통합당에 득(得)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독(毒)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권력을 다 잡은 듯 오만함과 안이함이 도를 넘어섰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한미 FTA는 참여정부가 추진한 균형외교, 실리외교의 결실이다. 개방은 우리 경제를 도약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역설했다. 심지어 한미 FTA 반대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까지 비난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의식해서인지 “민주당이 집권하면 한미 FTA를 폐기하겠다”고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집권을 노리는 제1야당의 대표가 시류에 따라 수시로 말을 바꾸면 어떻게 그 정당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노 전 대통령은 생전에 ‘원칙 있는 승리’가 제일 좋은 것이고, 그 다음이 ‘원칙 있는 패배’이고, 가장 나쁜 것이 ‘원칙 없는 승리’라고 했다. 만약 한미 FTA 폐기를 기치로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원칙 없는 승리’이고, 노무현 정신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다.
둘째, 공천혁명은 사라지고 ‘기득권 지키기 공천’과 ‘코드 공천’이 판을 치고 있다. 3차까지 117곳의 공천을 발표했지만 현역 의원은 단 한 명도 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사무총장을 버젓이 낙점하는 ‘배째라 공천’을 감행했다. 그 이유가 가관이다. 무죄추정의 원칙 때문이라고 하니 기가 막히다. 이런 민주당이 어떻게 새누리당을 향해 ‘뼛속까지 부패한 정당’이라고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오죽하면 공천심사위원장이 민주당 지도부가 공천과정에 개입하는 것에 강하게 반발해 공천심사를 중단했겠는가.
말 바꾸기와 오만 심판 받는다
2004년 총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만든 열린우리당은 탄핵 광풍에 힘입어 과반수인 152석을 획득했다. 그러나 2008년 총선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고 통합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꿨지만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수도권은 더 참담했다. 2004년에는 76석을 얻었지만 2008년에는 26석밖에 얻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덕적 우월주위에 빠져 국민과의 소통을 멀리 한 채 ‘닫힌 너희당’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한국 선거에서는 후보가 누구인지 정책이 무엇인지 모른 채 ‘묻지마 식 투표’를 하고, 찍고 나서 후회하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하지만 말 바꾸고 오만하고 무능한 세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응징한다는 진실도 동시에 존재한다. 민주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부정에서 벗어나 짝퉁 노무현 정신을 배격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선거에 몰입하는 것이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교수 joon57@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