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국제부
탈북자들은 실명이나 얼굴 등 개인정보 공개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신상 공개가 북에 있는 가족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반인처럼 명예훼손이나 경제적 피해, 정정보도나 피해보상 같은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목숨이 달린 문제인 것이다.
지난해 서울고법은 자신들의 신상을 언론에 공개하는 바람에 북에 있는 가족 26명이 실종됐다며 탈북자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1억2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아무리 천문학적인 배상을 받는다 해도 가족을 잃은 울분을 대신할 순 없을 것이다. 물론 가족이 피해를 볼까 봐 기자회견을 할 수 없다고 버티는 탈북자들을 기자회견장으로 내몰던 1990년대와 비교하면 사정이 몰라보게 나아졌다. 당시엔 누군가가 남쪽에서 탈북 기자회견을 했다고 하면 북에선 수십 명의 일가족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갔었다.
탈북자 구명을 위해 구명운동이 어쩔 수 없이 공개리에 벌어지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지 못한 기사 한 줄, 말 한마디로도 귀한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언론과 관련단체들이 더욱 깊이 새기기를 호소한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