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념사 ‘위안부 해결’ 촉구… “日, 지금 못풀면 영원히 기회 놓쳐” 위안부 할머니 57명에 선물-편지 “日 사과, 어느 외교현안보다 시급”
이 대통령은 “이분들이 마음의 한을 살아생전 풀지 못하고 떠나신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일본이 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되는 것”이라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을 “미래를 함께 열어갈 동반자”라고 묘사했지만 관심은 지난해 12월 한일 정상회담 이후 약 2개월 만에 나온 고강도 주문에 모아졌다. 이날 연설에는 역사교과서 왜곡 등 다른 현안은 물론이고 대북 메시지조차 담기지 않았다. 군 위안부 해결 촉구의 메시지가 흐려지는 것을 피하려는 듯했다.
이는 평균 나이 87세에 이른 고령의 할머니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해결하는 것을 이 대통령이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되는 교과서 왜곡이나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독도와 달리 군 위안부 문제는 촌각을 다투는 문제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대통령의 결의는 취임 초기와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 MB,한일관계 ‘위안부 집중’… 정부 “이젠 日이 답할 차례” ▼
그런 만큼 청와대는 이제 공이 일본 쪽으로 넘어갔다고 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상회담과 기념사를 통해 문제 제기를 했으니 일본이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낼 차례”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5월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 때 단독 대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본 정부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게 만들 지렛대가 부족하다는 게 한국 정부의 현실적 고민이다. 정부는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논의하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일본 정부가 “1965년 청구권 협약으로 모든 법적 문제는 끝났다”고 버티면 난항을 겪을 소지가 크다.
일본의 이 같은 태도는 국내 정치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다 내각은 동일본 대지진 복구와 소비세 인상안 등 산적한 국내 정치 현안에 발목이 잡혀 있다. 내각 지지율이 20%대까지 추락해 언제 국회 해산을 하고 총선거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정치적으로 입지가 좁은 노다 총리로서는 보수우익의 반발을 초래할 군 위안부 문제에 선뜻 나서기 어렵다.
일본 사회가 군 위안부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잃은 측면도 있다.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군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 8월 4일)나 식민지 침략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1995년 8월 15일) 때는 일본의 양심적 진보세력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20년 정도 흐른 현재는 당시 진보세력이 현역에서 은퇴해 힘이 소진한 상태다.
이 때문에 한일 외교가에서는 군 위안부 문제로 촉발된 관계 경색이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표류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양국 외교가 군 위안부 문제를 풀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면 주요 현안의 하나인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탄력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일 군사정보 교류 등 전반적인 방위협력도 양국 현안에서 뒤처질 가능성이 있다. 두 현안 모두 한국보다는 일본이 강하게 요구하는 사안이지만 서먹한 한일 관계는 전반적인 양국 관계의 불안정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